brunch

매거진 고전탐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창가 Oct 30. 2022

고전 문학 속 백 년 묵은 인간들을 만나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책꽂이에 고이 묵혀둔 고전 문학 작품을 한 권씩 꺼내 읽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너무 유명해서 안 읽었는데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작품들부터 의욕 넘치는 내 손에 들려서 우리집으로 왔다가 책장 한 켠에서 10년 째 먼지만 뒤집어 쓰고 날 째려보던 왠지 안 읽으면 죄책감이 느껴지는 작품들까지. 사 놓고 대체 안 읽는 건지 하면서도 끝까지 안 읽고 버텨온 시간이 돌아보니 부끄러울 만큼 길었다.



우연한 계기로 처음 펼치게 된 '동물농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도장깨기 하듯 한 달에 한두 권씩 정복해 나가고 있다. 나의 고전 문학 탐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도 매우 열정적으로! 이제껏 안 읽다가 갑자기 어떻게 이게 가능해졌을까. 문체도 배경도 여러가지로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은 작품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인간들이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다들 놓치는 사실이 있다. 고전 문학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읽은 고전인 '동물농장'도 얼핏 동물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동물을 빗댄 인간의 이야기이다.(읽어본 사람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인간이 푹 빠지는 게 당연하다. 인간의 시작은 나이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스토리는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을 계속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전 문학 속 인물들이 알려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 덕분이었다.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백 년 전, 200년 전 인간이라고 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하나 다를 것 없고, 제아무리 밑바닥이나 상류사회 일원이라 해도 평범한 현대 사회인인 우리와 사고방식이나 생활패턴이 깜짝 놀랄 만큼 흡사했다. 무엇보다 남의 뒷담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내력인가 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뒷담화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는데 어려운 자료 찾아볼 필요 없이 고전 문학을 읽으면 그냥 저절로 이해가 된다.



두 번째 이유가 더 특별한데, 내가 특히 고전 문학에 빠져들게 된 건 아마도 삶이 힘들어서일 것이다. 사람이 사는 건 원래 힘들다.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도 그 나름의 이유로 힘들 거라 생각한다. 그 사람은 안 그런 사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 자기 나름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나름의 괴로움과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는지. 최고의 위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나 말 한 마디가 아니라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다. 곱씹을수록 씁쓸한 말이지만 사실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고전 문학 속 인간들은 내게 이런 존재다. 죽고 싶도록 힘든 날, 쓰레기 같은 인간을 만나고 온 날, 해결되지 않는 관계 때문에 침잠하고만 싶은 날, 고전을 펼쳐들면 나보다 더 괴롭고 불행한 인간이 반드시 등장해서 이렇게 말한다.



야,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날 봐.



고전 문학 속에는 정말로 나보다 더 힘든 인간이 나와서 내가 만난 인간들보다 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상대하면서 가슴을 쥐어뜯고, 고통스러워하고, 밤잠 못 이루고, 고뇌하다가, 어떤 행동을 취한다. 그 행동이 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나는 내 상황에서 이렇게 했는데 너라면 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니 라고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받은 나는 곰곰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벌써 감정이 상당 부분 해소됨을 느낀다. 그리고 위로 받는다. 아,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나와 똑같은 친구가 있었구나.



실제로 읽은 작품이 한 권씩 쌓여갈 때마다 백 년 묵은 친구가 하나씩 생기는 것처럼 든든하다. 그들은 나와 똑같은, 혹은 나보다 더한 상황을 먼저 맞닥뜨려 보았고 죽고 싶은 내 심정을 미리 경험해 보았으며 나와 다이렉트로 교류할 수 없어서(책 속에 있으니까) 관계가 틀어질 일도 없다. 이렇게 듬직한 인간관계가 있을까!



이제부터 내가 고전 문학 속 인간들을 통해 알게 된 인간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 약 스무 작품 쯤 하려고 한다. 독자분들도 공감하고 위로 받으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위대한 개츠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