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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n 06. 2024

캄캄한 길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만족스럽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잘하고 싶던 일을 성공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다 성공했다고 해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잘하고 싶을수록 이상하게 힘이 들어간다. 별생각 없이 쓴 글이 우수하다고 뽑히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힘을 뺄 필요가 있다. 최근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도 심심해서 끄적거린 소설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긴 문장을 쓰기도 싫어서 뚝뚝 끊어가며 쉬지 않고 써 내려갔는데 주변 반응이 좋았다. 더 써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흥이 나서 뒷 이야기를 지어내다가 자꾸 심각해지길래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건 아닌데 심각해지니까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전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일을 재미로 하느냐고 물으면 답이 궁했지만, 즐기며 쓴 글, 공들여 쓴 글은 반드시 티가 난다고 믿는 주의이기에 가슴속에 이미 생겨난 불신을 무시하고 나아가기가 어렵다. 무시한다한들 나 자신이 더는 매달리지 않는다. 나는 끈기가 없고, 쉽게 싫증을 낸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기량을 뽐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못한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하여 늘 정해진 시간,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같이 쓴다. 그래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건 역시 내 길이 아닌 걸까 의심하면서도 계속 쓴다. 내가 무시하고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오직 그 질문뿐이다. 작은 질문에도 픽픽 쓰러지는 최약체로 태어나서 아무도 보장해 준 적 없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게 가끔 바보짓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써야지, 그래도 써야지, 뭐라도 되긴 해야지. 주문이 너무 습관성이어서 효력이 없나 같은 생각을 할 때가 그나마 살만할 때이다. 가까운 미래는 보이지 않고, 먼 미래는 너무 많이 채색되어 눈이 아플 지경이다. 발끝만 보고 걷는 건 어릴 적 버릇이 아닐지도 모른다.



2024.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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