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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코끼리 Nov 27. 2023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기숙사에서 하룻밤 자고 났더니

요시다 기숙사, 에뮤의 피, 그리고 흔들다리 효과

타로와 내가 사귀게 된 계기는 정확하게, 핀포인트로 짚을 수 있다. 교토대학교의 요시다 기숙사. 우리 둘 중 누구도 교토대를 다닌 적은 없지만, 자기 본적지 주소를 잘못 적어서 우리의 결혼 성립을 위기에 빠뜨렸던 혼인신고서의  ‘증인 1’인, 회사 동기이자 친구인 신짱이 교토대에 무려 10년을 다녔다 (신짱은 물리학 박사다). 


만 서른에 첫 직장에 입사한, 일본에서 나고 자라 영어 공포증이 있는 신짱, 미국에서 자라고 영국에서 대학 졸업 직후 바로 취직한 스물 두살의 타로, 스물여덟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국제기구에서 컨설팅으로 이직한, 조금 어설픈 일본어를 쓰는 한국인인 나. 별로 공통점은 없는 동기들이었지만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일본에서 취직해서 처음 맞는 새해였는데, 가족이 해외에 있어서 명절에 갈 곳이 딱히 없던 나와 타로를 신짱이 자신의 마음의 고향인 교토대학교의 요시다 기숙사에 초대해 주었다. (자기 부모님네 집은 자기에게 딱히 마음의 고향은 아니라고…)


새해 전날, 하루 종일 교토 구경을 하다가 저녁 늦게 도착한 요시다 기숙사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 만들어진 낡고 쓰러져가는 목조건물이었다. 안에서는 난민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도 콜카타의 왠만큼 싼 숙소와 비교해도 위생면에서는, 아니, 더러움에서는 지지 않을 것이다. 곰팡이가 쓸어 있을 것 같은 음울한 회색의 벽들에, 수십 년 정도 쌓인 것 같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곳곳에 혼재하고 있었다.


대학 당국은 요시다 기숙사를 폐쇄하고자 했지만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저항하며 학생자치라고 해야 될지 무단점거라고 해야 될지 하는 형태로 기숙사를 계속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를 맞아준, 창백한 낯빛의 여드름이 난 남자 대학생이 우리에게 방문자의 하룻밤 숙박비는 200엔이라고 알려 줬다. “내기 힘들면 안 내도 괜찮으니까” 하고 덧붙이면서.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한달에 기숙사비로 2~3천엔 정도를 내고 산다고 한다. 


요시다 기숙사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었다. 요시다 기숙사는 처음에는 메이지 유신 시대의 엘리트가 생활하는 기품 있는 기숙사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학생운동의 산실이 되었다가, 지금은 무언가 아주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투어의 백미는 공용 부엌이었다. 부엌 벽에는 뭔가 갈색의 염료로 벽화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에게 기숙사를 보여주던 신짱의 후배가 말했다. “옛날에 여기서 에뮤를 기른 적이 있거든. 근데 그러다가 에뮤가 차에 치여서 죽어서, 그 죽음을 기념하려고 여기에 에뮤의 피로 벽화를 그렸어.” 


아니, 도대체 에뮤는 어디에서 나왔고 왜 기른 건데…! 


하지만 확실히 그 곳에는 뭔가 유토피아적인 것이 있었다. 유토피아가 콜카타의 싸구려 숙소랑 닮았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지만… 젊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는데, 잡지에 나올 듯한 반짝이는 젊음이 아니라, 목표 없이 부유하는 가난한 청춘들의 미숙함, 길 잃음, 외로움, 그렇지만 우정과 자유도 같이 느껴지는, 무엇이든 다 일어날 수 있을 것 그런 공간이었다. 


에뮤의 피로 그린 벽화라든가. 누가 “떡 먹고 싶어” 그러면 어딘가에서 오래되고 지저분한 절구와 절구 공이를 누군가가 꺼내 와서, 쌀을 찌고 떡을 찧기 시작하는, 그런 공간. 


그리고 다들 정말 돈이 없었다. 간단한 저녁을 해서 먹으려고 신짱의 친구들과 슈퍼에 들러 이것저것 식재료를 사고, 나와 타로가 계산을 하니, 다들 너무나 기뻐했다. 에뮤의 피로 그려진 벽화가 있는 부엌에서 맛있게 튀겨진 새우튀김을 우리에게 먼저 건네며 신짱의 친구는 말했다. “마음껏 먹어! 너희가 스폰서잖아!”


투어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재야의 종소리를 들은 후, 새벽까지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있는 신짱을 뒤로 하고 타로와 나는 자러 갔다. 방문객들은 다 같이 모여서 커다란 수면실에서 침낭을 펴놓고 자게 되어 있었는데, 어두운 방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프로젝터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켜놓고 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구석에서 웅크려 자고 있었다. 


자기 전 샤워를 할까 생각해 기숙사를 둘러봤지만, 찾아낸 샤워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차마 씻을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돌아다니는 길에는 복도 곳곳에 학생들이 붙여놓은 전단지나 포스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성추행에 사건에 대한 공청회 일정이 적혀져 있었고, 성범죄를 규탄하는 포스터도 보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걸 묻어두지 않고 공론화한다는 건 어느 정도 집단으로서의 자정 능력을 의미하겠지만, 아무래도 큰 방에서 혼성으로 자기 전에 그런 걸 봤으니. 


결국 타로에게 물어봤다. “옆에서 자도 괜찮아? 여기 좀 불안해서.” 타로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나에게 벽 쪽 자리를 내주고 그 옆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쓰레기통 같은 방에서 약간의 안심감을 느끼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꼬끼오 하는 우렁찬 닭 소리에 새벽 일찍 잠을 깼다. 왜인지 어제 슈퍼에서 같이 샀다가 결국 안 먹었던 우동 면 봉지가 내 얼굴 옆에 구르고 있었고 (내가 샀던 거라서 나한테 돌려준 건가?), 천장 위에서는 도도도도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쥐들이 지나가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애써 마음에서 밀어냈는데, 타로도 깨어 있었다. 


“잠을 못 잤어. 천장에 쥐가 있는 것 같아. 으으으… ”


내가 하룻밤의 안전을 의탁한, 미국과 영국에서 자란 깔끔한 남자애의 얼굴은, 창백했다. 요시다 기숙사에서의 하룻밤을 마치고 다음 날, 백지장이 된 얼굴의 타로를 데리고 교토역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신칸센 열차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서 타로가 치를 떨며 말했다.


“거기 있다 보니까 내 자신이 너무 더럽게 느껴져.”

“그러게, 나도 집에 가면 빨래부터 해야겠다.”

“아니, 난 거기서 입었던 거 다 태워버릴 거야.”


넋이 나가버린 타로는 가련하고도 귀여웠고, 요시다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우리에게는 뭔가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겨버렸다. 타로는 결국,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아기처럼 잠들었고, 나는 어쩐지 마음이 두근거려 버렸다.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껴 버리는 걸 흔들다리 효과라고 하던데.


어쨌든, 그 때의 그 두근거림에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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