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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목 Jul 19. 2022

엄마가 아니라 24시간 입주 강사


1. “초2 올라가는 딸아이, 현재 수학3-2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아이가 엄마가 옆에 있질 않으면 잘 하려고 하질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든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학원은 다니지 않고 전부 ‘엄마표’입니다. 조언 좀 꼭 부탁드립니다.” 전에 내가 대표로 있었던 부모2.0 사이트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이다. 


2. 꽤 길게 답변을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엄마표가 뭘까요? 학원에 안 보낸다고 엄마표라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지금 엄마는 학원에 안 보냈다 말하지만 집에서 강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초2 올라가는 아이가 현재 3학년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는 걸 보니, 엄마가 학원을 대신해서 아이에게 선행을 해주고 있네요. 무허가 공부방을 차려놓고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공부방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3. 아이 입장에서 말해줬다. “말이 엄마표이지 실은 아이 입장에서 보자면 학원 선생님인 엄마를 둔 것입니다. 그것도 24시간 입주 강사입니다. 대개 엄마표 입주 강사의 실력은 학원 강사보다 떨어집니다. 게다가 걸핏하면 화까지 냅니다. 그러니 엄마가 싫어지고 공부도 싫어지는 겁니다. 엄마가 학원 강사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아이는 엄마를 엄마로 보지 않고 학원 선생님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부할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편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이건 엄마표가 아닙니다.”


4. 학원 선생님보다 잘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24시간 퇴근도 하지 않고 있는 입주 강사를 대하는 아이의 심정은 어떠할지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부모들이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을 ‘엄마표’라 생각하고 있다. 


5. 학원에 보내든 말든,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아이의 눈에 엄마가 아닌, 스물네 시간을 함께 하는 입주 강사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학원 강사 역할을 대신하려 할 때 ‘엄마표’는 필연적으로 아이와 부딪치게 된다. 엄마는 학교 선생님도 학원 강사도 아니다. 그렇게 흉내낼 때 아이의 공부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도 어긋나게 된다. 


6. 엄마표를 표방한 책의 핵심은 책에 나오는 ‘방법’에 있지 않고, 그 책을 쓴 사람의 ‘정신’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표 성공 신화를 따라하지만 정작 주위에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정신은 놔둔 채 방법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7. 공부 방법에 대한 정보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조금만 노력해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소한 방법에 얽매이지 말라. 책을 관통하는 원칙과 정신에 집중하라. 책 속 아이들이 어떤 교재를 보고,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현상에 몰입할수록 본질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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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19일 새벽에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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