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솔이 부모는 학원 강사다. 부부가 학원을 운영하며 직접 강의를 하고 있다. 한솔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고 연년생 동생이 있다. 한솔이 부모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어서 교육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2. 한솔이 엄마가 상담을 요청해왔다. 명색이 학원 강사인데 아무리 가르쳐도 100점이 안 나온다고, 남들 잘 받아오는 그 흔한 100점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고,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전쟁을 치른다고 하소연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고, 점점 가르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고, 미칠 것 같고, 울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3.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내가 보기에 학업이나 생활 태도 면에서 아이에게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엄마 마음만 조급했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엄마도 아이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4. 초등학교 1·2학년이면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이다. 갈 길이 멀다. 옛날 일이긴 하지만 우리 딸도 저 때는 저 정도의 성적에 머물렀고,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의 성적 때문에 걱정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직업으로 인해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직간접적으로 십수 년을 보아왔다. 그 결과 초등학교 때의 성적이 끝까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공부 실력은 결국 중·후반기에 드러난다는 것, 초등학교 때는 성적보다 공부의 기초 체력과 습관을 잡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5. 나는 많이 보아왔다. 늦게라도 공부 흥미를 발견한 아이는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는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공은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시기 - 학창시절에 형성된 다른 그 무엇에 의한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 무엇이 바로 내가 쓰는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6. 초등학생 시기에 얻어야 할 것은 성적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인식이다. 공부 경험에 따라 공부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고 점점 싫어질 수도 있다. 공부에 대한 인식이 훗날 공부의 성패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이 시기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꾸준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7. 늘 100점 받는 아이가 마지막까지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사회에 나가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자기가 약한 부분을 노력해가며 극복할 수 있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너무 당연하여 뻔한 진리인데도, 너무 가까이서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는 이런 평범한 사실을 곧잘 잊곤 한다.
8. 한솔이 엄마처럼 직업이 강사인 부모만 조급한 것은 아니다. ‘엄마표’를 실천하는 많은 부모들이 이런 경험을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를 고민하고,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기대만큼 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다.
9. 학원은 일정한 기한 내에 성적을 올려야 하는 의무감이 있다. 그래야 생존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것보다 당장 성적을 끌어 올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학원은 그래도 된다. 학생도 부모도 그것을 원한다. 엄마표는 ‘엄마’가 먼저다. ‘엄마’를 잃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진다.
10. 공부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하는 것이다. 엄마가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확실한 기초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기초를 잡으려다 아이까지 잡는다는 것이다.
11. 자녀를 너무 사랑하다 보면 집착이 되고, 너무 잘 가르치려다 보면 조급하게 된다. 엄마표의 성패는 잘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동안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공부가 즐거워지는, 성취감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2. 이런 말을 하면 간혹 ‘그건 너무 이상적이에요’라고 하는데, 엄마표로 성공한 거의 모든 분들이 이러한 뻔한 원칙을, 쉽지 않게 실천한 결과다. 현실적인 것을 좇다보니 당장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에 연연하게 되고, 그 결과, 공부 잡는 엄마표가 아니라 아이 잡는 엄마표가 되었던 것이다.
※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0일 새벽에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