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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목 Jul 23. 2022

자녀 교육은 결국 자기 수양


1. 초등학교 1학년 민석이 엄마는 내 강연을 듣고는 일단 하루 공부량을 줄였다. 하루에 30분 정도만 함께 공부한다. 방과 후에 숙제 먼저 하고, 두어 과목 문제집 몇 장 푸는 것이 전부다. 자기 전에 책 읽기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정도면 다른 아이에 비해 공부 분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불평불만이 많다. 여전히 공부가 힘들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 민석이 엄마는 자신의 의도를 몰라주는 아이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려봐야 아이가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했다. 


3. 서로 경쟁하듯 공부를 많이 시키려할 때, 민석이 엄마는 오히려 공부의 양을 줄였다. 아이를 시험과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통스럽게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공부 습관을 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4. 그런데 아이는 별로 행복하지 않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도 아프다. 엄마 말마따나 아이를 정말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면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까? 학원 순례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과연 행복할까?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 왜 엄마는 힘들어할까?


5. 아이들이 공부를 어려워하는 것은 공부할 양이 많아서가 아니다.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양을 줄이는 것은 꼭 필요한 조치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아이는 금방 그 양에 적응하면서 차차 그것조차 많다고 느끼게 된다. 공부 분량이 줄었다고 해서 공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아니기 때문이다. 


6. 간혹 저학년 때 충분히 놀게 한 후 고학년 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시키겠다는 부모가 있다. 충분히 놀고 나면 ‘이제는 공부 좀 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길까? 이런 극단적 구분은 오히려 노는 것과 공부는 전혀 별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노는 것은 즐겁고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7.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운동장이 놀이터이듯이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도서관도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노는 것이 신체적 유희라면 공부는 정신적 유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8. 학창시절 때 공부가 즐거웠냐고 간혹 강연 때 물어보는데, 그렇다는 부모가 거의 없다. 부모의 머릿속에 이미 학교 공부는 힘들고 괴로운 것, 그러나 참고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공부라는 고통을 견뎌내면 성공이라는 보상이 온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나는 이것을 공부 경험의 대물림이라고 부른다. 


9. 강제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방법은 쉽다. 단기적으로 성적이 오른다. 이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학부모가 되려는 것이지만, 그 끝이 대개 좋지 않다. 아이에게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면 자녀교육에 실패한다.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요, 하고 싶은 상황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심리적 고통 없이 공부를 대하는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이것이 자녀 학습지도의 제1원칙이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초등생과 중고등학생이 조금 다르다. 


10. 민석이 엄마는 ‘빠른 교육’의 폐단을 알고 있다. 대신 아이가 자연스레 공부 습관을 들이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느린 교육’을 택했다. 느린 교육은 ‘인내’를 전제로 한다. 느린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의 태도가 답답해 속이 뒤집힌다.  자녀교육은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결국 부모의 자기수양인 것이다. 


11.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자녀교육이다.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인의 지혜와 나의 경험과 각성에 의하면, 남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다. 사실 나를 바꾸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다. 


12. 자녀교육은 그래서 자기수양에 가깝다. 나를 통해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다. 아이를 직접적으로 변하게 하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내가 먼저 변하고 아이가 닮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순리다. 가장 느릴 것 같은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자녀교육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녀교육서는 아이를 다루는 매뉴얼이 아니라 마음을 다루는 영혼의 처방전이어야 한다.


13. 자녀교육은 자기수양이다. 처음엔 아이를 바꾸려 시작하지만 궁극에는 내가 변한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아이는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가 클수록 내 마음도 깊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3일 오전에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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