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교 3학년 민재 엄마는 학기 초에 교과서를 받아들고는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2학년 때까지 없었던 영어,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이 추가되고 수학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집에서 꾸준히 지도했지만 엄마가 보기에 아직 민재의 기초 실력은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가르쳐야 할 것이 갑자기 많아지니 한숨부터 나올 수밖에. 올해 2학년이 된 이현이 엄마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1년 동안 아이를 가르치며 참 많이 힘들어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다가 우울증마저 의심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2. 이현이 엄마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밥해 먹이고 뒤치다꺼리하기도 힘든데 가르치기까지 해야 하니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이런 나를 남편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니 더 미치겠다.”는 말도 했다.
3. 이런 고민이 민재와 이현이 엄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령기 자녀를 둔 모든 학부모의 고민이다. 우리가 자랄 때처럼 도시락과 수업 준비물 챙기는 것만으로 초등학생 학부모 노릇을 하던 때는 지났다. 물론 그때도 열혈 학부모들이 있었으나 지금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4. 이제는 부모 노릇에 더하여 어느 정도 교사 역할도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과 내용이 뻔한 저학년을 가르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부모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번번이 틀리는 아이를 보면 엄마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한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별 소용없다. (물론 아빠가 더 열성인 가정도 있다.) 그래봐야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면 이현이 엄마와 같이 무기력을 넘어 우울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5. 마음이 많이 아픈 이현이 엄마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했고,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았는데, 왜 그 아이로 인해 그토록 괴로워하나요?” 야박한 질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왜 우리가 자녀교육 때문에 이토록 괴로워하는가? 모두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6. 솔직해지자. 화를 내는 건 나의 스트레스를 표출하기 위함이요, 괴로워하는 건 나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잘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변명일 뿐이다. 마지못해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 잔뜩 괴로워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결코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힘들어하는 얼굴로 고되게 가르치는 선생님께 우리가 배울 게 없듯이, 아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엄마로부터 아이는 공부의 고단함만 배우게 된다.
7. 자녀교육의 최대 장애는 다름 아닌 ‘화’다. 화 내지 않고 아이를 도울 수 있다면 엄마표의 90%는 성공한 셈이다. 그만큼 화를 참기 어렵다. 아이에게 쉽게 화를 내는 건 아이와 나 사이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우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눈에 띈다. 돋보기로 모공을 들여다보는 꼴이다. 모공이 커보일 수밖에.
8. 너무 절박하면 쓰는 방법이 거칠다. 아이에게 쉽게 화를 내는 건 너무 간절하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적당한 거리는 필수다. 가까이서 보면 허점이 크게 보이고 멀리서 보면 구체적이지 않다. 가까우면 간섭하고 멀면 무관심하게 된다. 이 조화가 깨지면 아이의 교육은 망친다. 교육은 그래서 어렵다. 답은 없다. 이 책에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려 하지만 답은 아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화를 내지 않고 아이를 지도하는 법을 다루고 있지만, 3부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9. 이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자녀교육에 대한 원칙을 굳건히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일상적으로 아이를 지도할 때의 구체적인 방법도 이야기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구체적인 지도 방법도 충실히 담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원칙, 그것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럴 때만이 구체적인 방법이 효과가 있다.
10. 자녀의 학습지도로 인해 생기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즐기거나 감당하거나. 남편이 최근 회사 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고 늘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하다면 옆에서 지켜보는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을 보는 당신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을 즐기든가 아니면 감당하는 것이다. 감당한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즐기지도 못하고 감당도 안 되면 그만둬야 한다. 그래야 산다.
11.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마지못해 다닌다면 그건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 것이다. 직장은 그만둘 수라도 있다. 그러나 자식은 버릴 수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즐기거나 감당하거나. 학습 지도를 즐기든지, 아니면 지도를 포기하는 대신 학습지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든지, 학습지도가 원래 힘든 일임을 알고 감당하든지. 그럴 때만이 지속할 수 있다.
12.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공부 못하는 아이 때문에 엄마가 불행한 것보다 학습 지도가 서툴고 힘든 엄마로 인해 아이가 더 괴로운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지도 방법을 찾는다면, 우선 가르치는 행위를 즐겨야 한다. 즐기려 마음을 먹어야 방법이 보인다. 엄마표 성공 사례를 담은 책들은 대개 가르침을 즐기는 엄마들의 행복 경험담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수학을 즐기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게 만들까? 이것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엄마표 교육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다.
13. 엄마가 교사의 역할까지 전적으로 도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엄마는 가장 좋은 선생님’이란 말은 허상이다. 엄마 역할 제대로 하기조차 벅차다. 엄마 역할만 제대로 해도 우리 아이는 충분히 행복하다. 엄마표 교육, 안 해도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가정교사의 역할까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즐기겠다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14. 세상에는 두 가지 엄마표 교육 방식이 있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모르는 아이에게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이런 것도 모르면 어떡하니?”라고 아이에게 화를 내는 방식과 ‘우리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하며 자신에게 되묻는 방법이 그것이다.
15. 우리는 앞의 한 가지 방법만 너무 써왔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괴로워만 할 줄 알았지, 가르침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를 돌아볼 줄은 몰랐다.
※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3일 오후에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