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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목 Jul 24. 2022

습관 잡는 가장 좋은 방법, ‘함께하기’


1. 학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가끔 “선생님의 자제분은 공부를 잘하세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그냥 웃어넘기고 싶지만 질문한 사람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여 답변을 하긴 하는데 “못하지는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 답을 들은 학부모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잘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말들이 오가면서 나는 ‘짧은’ 상담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2. 나의 상담 목적은 우리 아이들을 공부 잘하게 하여 유명 학교에 보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부모와 자녀가 공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더 잘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부를 공부로 인식하는 순간, 공부는 힘들다.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공부가 부모와 자녀의 현재 관계를 악화시키고 미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자녀와 부모가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3. 초등학교 3학년 재욱이 엄마는 재욱이가 입학한 이후로 저녁에 기분 좋게 잠들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숙제와 공부 잔소리로 늘 하루를 마감하는 재욱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3학년인데도 아직 공부 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으니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조금 여유를 가지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는, 지금 제대로 습관을 잡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드니 어떻게든 저학년 때 공부 습관을 잡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나의 조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런 재욱이 엄마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4. 습관은 생각보다 무서워서, 처음엔 내가 습관을 기르지만 나중엔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습관을 잡으려다 아이를 잡는 건 명백한 본말전도다.


5.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 너무 아픈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사랑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사랑이 아니고, 지적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기 힘든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공부는 행복하기 위한 과정이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6. 불행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공부로 인해 불행하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의 마음도 아프다. 십수 년을 엄마와 싸워가며 아프게 공부한 아이들이 어찌 행복해지는 법을 알 수 있을까?


7. 세상이 학교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부모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아프지 않게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서 나중에 행복해지자고 생각하지 말고, 공부하면서 지금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자.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8. 상담을 하며 아이에 대한 엄마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랑은 진정성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진정한 사랑일지 모른다. 


9. 진정성이 있다면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기술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공부 지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하니까 떠난다는 말은 대개 떠나는 사람의 변명이고, 손이 닿지 않아 못 따먹은 포도를 신 포도라 우기는 것은 사다리를 이용할 줄 모르는 여우의 변명이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공부는커녕 관계만 나빠졌다는 것은, 이빨 빠진 톱으로 나무를 베면서 왜 나무가 이리 단단하냐고 푸념하는 꼴이다. 


10.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공부 지도를 위해 당근과 채찍을 쓴다. 보상이라는 당근과 잔소리라는 채찍을 쓰는데, 당장 버려야 할 이빨 빠진 도구다. 당근만 보고 달리는 말은 당근이 사라지면 멈추고, 채찍을 써야 달리는 말은 채찍질이 멈추면 걸음 또한 멈춘다. 


11. 아이의 습관 지도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함께하기’다. 집에 러닝머신을 두고 혼자 달리는 것보다 헬스클럽에 다니는 까닭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함께하면 지속하기 쉽다. 그러면서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한다는 느낌이 있다. 


12. 함께하기의 가장 큰 이점은 아이가 ‘스스로’ 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데 있다. 밤늦게 잠들어 늦잠 자는 아이라면 가족이 함께 10시에 불을 끄고 자야 한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가족이 모두 책 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고, 집중력을 키우고 싶다면 식사할 때 다같이 TV를 끄고, 밥 먹을 땐 식사에만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 습관을 키우려면 매일 함께 공부하면 된다. 


13. 주의해야 할 것은 ‘함께하기’는 감독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상황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공부할 때는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엄마 공부를 하고 아이는 아이 공부를 하면 된다. 처음엔 아이를 많이 도와줘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그저 옆에 앉아있기만 해도 된다. 더 시간이 흐르면 엄마가 자리를 비워도 아이는 제몫의 공부를 하게 된다. 


14. 함께하면서 습관의 근육이 단련되어 간다. 이렇게 단련된 공부습관을 토대로 중학교 때는 자기만의 공부법을 찾도록 도와주고, 고등학교 때는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엄마표 공부 지도 방법이다.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4일 오전에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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