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 역할과 엄마표 교육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나 역시 내가 강연하는 내용을 모두 실천하지 못한다. 아이가 어릴 때 주말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내 역할의 거의 전부였다. 평일에는 우리 딸도 남들처럼 몇몇 학원을 다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표정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다. 아이의 공부 습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엄마표 교육을 강연하는 사람이 어찌 제 자식은 학원에 보내느냐는 뜻일 게다. 그런 분은 십중팔구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2. 나는 수백 회의 강연을 했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그것은 오직 부모가 알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다고 나는 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학원에 보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자녀교육의 핵심에서 비껴있다. 아이에게 책을 사줄 때 하나씩 낱권으로 사줘야 하느냐 전집을 사주는 게 좋으냐는 문제와 비슷하다.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가정의 재정적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집을 사는 것은 좋지 않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 있으니 답답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집의 모든 벽면을 아이의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과자로 만든 집이 아니라 책으로 지은 집을 만들고 싶다.
3. 엄마가 직접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힘든 일이다.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심정이다. 아이의 실수나 잘못에 크게 개의치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거나, 아니면 자기수양을 통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직접 가르치기도 힘들거니와 집에서 엄마가 직접 가르치는 것이 무조건 좋을 수는 없다.
4. 엄마가 만든 음식이라고 해서 항상 맛있는 건 아니듯이,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오히려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 아이 마음 아프고 엄마 가슴도 성하지 않다. 그럴 땐 ‘차라리 학원에 보내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학원비가 어디 만만해야 말이지.
5. 이것저것 학원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게다가 학원에 보내는 것이 근본 처방은 아니다. 여러 방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학원에 보내는 게 좋을지 집에서 계속 직접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을 줄 수 없다. 무엇보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 학원 외에 달리 대책이 없을 수도 있다.
6. 학원을 보내든 보내지 않든 ‘자기기만’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화를 내는 것은 결국 그 선택이 자기기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놓고 꺼림칙한 마음 갖지 말고, 아이를 직접 가르치면서 분노에 휩싸이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마음 갖기 쉽지 않으나, 그래서 자녀교육에는 원칙과 확신이 필요하다.
7. 자녀교육에 대해 확신이 없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확신을 가지라는 말밖에 없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은 자녀교육에 대한 원칙과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소소하고 구체적인 지도 방법이나 실천 사항을 언급하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자녀교육 원칙에 동의하는 분들만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8. 많은 책을 읽는다고 확신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이 읽을수록 답답하고 조급해질 수 있다. 이 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 말이 다르다. 나의 말 역시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전문가들의 책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 결국은 자녀교육에 관한 한 최종적으로는 부모의 결단이 요구된다.
9. 다시 학원 문제로 돌아가 보자. 엄마표 교육은 엄마가 직접 가르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우리 아이에게 좋은 공부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며, 공부의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주도하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데 있다. 엄마가 직접 가르치든지 학원을 이용하든지 판단의 근본 기준은 이 두 가지에 있다. 내가 직접 지도하는 것이 우리 아이의 공부 습관 형성과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더불어 내가 아이를 지도할 때 행복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가르치는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 역시 행복할 리 만무하다.
10.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엄마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가 변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교육 제도, 특히 공교육의 개선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그런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공교육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부모의 고민과 갈등이 너무 급박하기 때문이다. 자칫 공허하게 들릴까봐 그런 것이다.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4일 오전에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