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당신의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성적표에 다음과 같은 담임선생님의 조언이 쓰여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격도 좋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ㅇㅇ가 3학년에 올라와 학업 성적은 기대만 못합니다. 2학기에는 분발하여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2. 어느 아버지가 이렇게 썼다. “학교생활이 밝고 건전하면 됐죠 뭐” 인터넷에 한동안 떠돌던 어느 중3 아이의 성적표(통지표)가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일부 신문에 기사화까지 되었다.
3. 학교생활을 밝고 건전하게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투다. 말투는 일단 논외로 하고, 아이의 성격이 밝고 건전하다면 성적은 조금 떨어져도 별문제가 없다는 이 말. 당신은 공감하는가? 강연회 때 조사해보니 공감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성적이 ……’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았다.
4. 살면서 드는 생각이,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성적보다는 성격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의 성적이 기대에 조금 미치지 못하더라도 밝고 건전하면 됐다고 했을 것이다.
5. 성적이 중요하냐 성격이 더 중요하냐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책 없는 어느 아버지를 통해 그냥 한번 웃어보자고 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과연 이 아버지처럼 확고한 교육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를 묻고 싶은 것이다.
6. 중3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최대한 기본기를 쌓아 두어야 하는 시기다. 공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러한 때에, 공부를 조금 못해도 밝고 건전한 것이 우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녀 교육의 원칙이다. 철학이다.
7.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그럴 때 나는 되묻는다.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 바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 뜸을 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개중에는 한참 생각하다가 “사실 건강하게만 자라면 되죠. 뭐.”라는 분도 있다. 너무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가 아무리 야단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지나치게 건강한 아이 때문에 나를 찾아왔으면서 말이다.
8.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모든 부모의 바람은 아이가 건강하게 나와서 건강하게 자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부모는 비교하기 시작한다. 신생아, 1개월, 2개월, 월령별 기준 몸무게와 키, 발달 정도를 비교한다. 한 살, 두 살, 다섯 살, 여섯 살, 연령별로 발달 수준과 학습 수준을 비교한다.
9.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기준, 표준에 우리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비교하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조급해진다. 더뎌도 불안하고 빨라도 걱정이다. 그렇게 십여 년을 지내다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10. 큰 원칙이 서면 작은 일로 흔들리지 않는다. “학교생활이 밝고 건전하면 됐죠. 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원칙이 서야 지속할 수 있다. 목적지가 명확한 비행기도 가는 내내 흔들린다. 흔들려도 길을 잃지 않는다.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11.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단 한 줄로 적어보자. 길면 안 된다. 욕심을 걷어내고 단 한 줄로 써보자. 내일 다시 수정해도 되니 몇 단어를 조합하여 단 한 줄로 써보자. 불안해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녀 교육은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한다.
2008년~2010년 현장 강의를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 정리하고, 2022년 7월 25일 새벽에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