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Oct 25. 2022

동네 커피집 사장님 우리의 (롤)모델 되다!

우연히 들린 강릉 서부시장의 커피집 '들꽃사랑'

오어즈에서 남대천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서부시장이 있다. 예전엔 매우 활발한 재래시장이었다고 하는데 최근엔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어 조금은 한산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갖고 있는 정취랄까 그런 특유의 정겨움이 있다. 또한 강릉에서 수준 높은 커피를 만드는 카페 하나, 레스토랑이 하나씩 있어서 아내와 나는 더 이곳을 좋아하게 됐다. 최근 친한 친구들이 이곳에 공간 하나를 준비 중이기도 하고… 난 충분히 이 시장이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시장 카페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 근처를 지나는데 아내가 말했다.

“평소에 저기 건물 앞에 멋쟁이 할아버지가 계신데 말이야 포스가 보통이 아니야” 난 운전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편인데 차 안에서 귀로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도 눈만큼은 주변 구경을 즐기는 아내가 그런 말을 했다. 그땐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얼마 후 친한 친구들 K와 H가 그 가게를 지칭하며 ‘커피맛도 꽤 괜찮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아내와 난 그 가게에 찾아가 커피 한 잔씩을 맛보았다. 가게 이름은 사랑스럽게도 ‘들꽃사랑’이었다. 정말 커피맛이 좋았다. 우리 부모님 또래로 보이는 사장님은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정중하게 우리를 대해주셨다. 그렇게 그 가게에서의 좋은 인상을 갖고 나왔다.


얼마 후 우리는 오어즈의 이름으로 자켓 하나를 제작했다. 올여름 티셔츠도 제작을 해봤지만 자켓을 제작해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단가도 제법 높아서 제작 공정에 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의 준비 끝에 자켓이 나왔고 홍보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됐다. 자켓은 워크웨어였기 때문에 강릉에서 멋지게 일하는 분들을 떠올리며 제작을 했고 그런 분과 간단한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진행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들꽃사랑 사장님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난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낙담하는 표정으로 “안 해주실 것 같아… 평소에 자주 오던 손님도 아니고 갑자기 그런 요청을 하면 거절하실 것 같아”라고 말했다. 어딜 가도 낯선 이에게 어렵지 않게 대화를 거는 나로서는 거절당할지라도 부담 없이 제안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팀워크가 맞다고 전부터 생각했다.


들꽃사랑 커피집으로 찾아갔다. 가게 앞에는 사장님이 서계셨다. 지난번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보기 좋은 풍채와 인상의 사장님이셔서 놀랐다. 카페에 막상 들어가니 나도 긴장이 되었다. 주문을 하면서 살며시 사장님께 자켓을 건네며 촬영에 대한 요청을 했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마침 그런 옷이 필요했다며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셨다. 입고 있는 옷 위에 그대로 자켓을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우리는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둥근 비니와 멋스러운 수염이 자켓과 찰떡이었다. 그렇게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사장님께서는 자켓도 선물로 받았으니 본인도 선물을 주겠다며 특별한 커피 한 잔을 내려주셨다. 앞서 주문한 커피도 맛있었지만 나중에 내려주신 커피는 더욱 복합적이고 깊은 향으로 우리를 만족시켰다. 사진 촬영은 일찍이 끝났지만 그 후로도 대화는 이어졌다. 어떻게 커피를 늦은 나이에 시작하게 되었는지, 좋은 커피맛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까지… 오후 3시쯤 방문했는데 따뜻한 저녁 해가 사선으로 시장 주차장을 비출 때쯤 대화는 마무리가 됐다. 이곳에 오기 전 아내가 밥을 먹으며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사장님도 똑같이 그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이곳에 다 담을 수 없지만, 대략…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설레는 일이 아니라 외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스로가 그런 굴레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본인은 딸이랑 무척 친하다고 아직도 다 큰 딸이 자기 등에 업힌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아내와 나도 조금 놀라며 크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연배를 여쭈니 딱 우리 엄마와 장인어른 또래였다. 우린 자연스럽게 우리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좀 더 아이처럼 자유분방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많아졌다. 사진촬영 모델을 찾다가 인생의 롤모델까지 찾은 기분이 들었던 그날의 밤. 걱정과 고심 끝에 제작한 오어즈 자켓의 시작이 좋아 아내와 나는 무척 행복해했다.


자상한 사장님께서 커피를 내려주셨다.



처음으로 우리가 만들어본 자켓






매거진의 이전글 테니스 강습을 망치고 얻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