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데? (강아지 입양기)
유년기부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난 말티즈, 시츄 등을 키우며 강아지들과 함께 성장했다. 없는 살림에 삼 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음에도 꼭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우리와 함께 키웠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어리고 무지했던 당시의 우린 강아지를 이뻐할 줄만 알았지 산책은 고사하고 똥오줌도 제 때 치우지 않고 미루기 일쑤였다. 강아지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얼마나 자주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지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곁을 떠난 예전 강아지들을 떠올리며 뒤늦게 커다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죄책감이 더 큰 이유는 불안한 내 사춘기 시절 강아지가 준 정서적 안정감과 위로가 그 무엇 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신이 형성되는 그 시기 강아지는 내 인성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이렇게 강아지에 대해 주절주절 떠드는 이유는… 사실 2주 전 우연한 계기로 우리가 강아지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처음 아내를 통해 제안을 들었을 때 난 얼토당토않은 일이라 여기고 고사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 되도 않는 환경에 강아지를 들여 고생시켰던 때가 가슴 한 편의 짐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완강한 내 태도에 아쉬운 눈치였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난 후부 터는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문자로 받았던 아이의 사진과 영상이 아른거렸다. 두근거림을 잠재우기 위해 유튜브에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이유’를 검색했다. 감정을 앞세워 강아지를 키우는 것만큼 아둔한 행동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정을 잠재우고 나니 실로 이기적인 우리 위주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강아지를 우리가 왜 키워야 하는데?’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일이 그렇다. 동, 식물을 키우는 일,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 모두… 하지 말아야 할 이유와 그로 인한 피로에 대해 열거하자면 백가지도 댈 수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보자면 머뭇거리게 된다. 경제논리로만 따지면 이런 류의 비교는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새 생명을 키우면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 작은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 탄생과 소멸의 이해, 세상과 우리가 이어져있다는 유대감… 등 이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감정적 영향은 측정이 불가하다. 아내는 살면서 강아지와 살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여동생의 강아지 시루를 돌보면서 매일 새로운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강아지의 코가 이렇게 촉촉한지, 이런 작은 생명체에게서 심장이 뛰는 게 신기하다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내를 나는 신기한듯 웃으며 바라본다. 아내도 강아지 앞에서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나에게도 애견생활은 커다란 세상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았다. ‘과연 강아지는 우리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더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아내와 나는 강릉살이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입양될 강아지 입장으로는 객관적 분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변 애견인들 몇몇에게 자문을 구했다. 강릉에서 강아지 네 마리를 키우고 있는 커플 친구들은 ‘최소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지금 환경보다는 훨씬 좋은 여건일 것’이라고 ‘너네 같은 환경의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강아지를 입양하겠어’라고 말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여동생은 그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했다. 요는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예민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평소 게으름을 자주 피우던 우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저격한? 따뜻한 조언이었다. 강아지를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생활상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강아지 입양을 결정했다. 이름은 우리집의 이름인 보트하우스에서 따와 ‘보뜨’로 새로 지었다. 최근 막 생일을 지난 두 살배기 골든두들이다. 사교성이 좋은 골든 리트리버와 똘똘한 푸들이 섞인 종이다. 그래서인지 넘치는 에너지와 사교성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인다. 이렇게 인연이 닿은 이상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도 했던 말이지만 이번에도 행복한 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겨서 기뻐!”라고 말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삶의 여정을 항해에 빗대어 자주 생각하는 우리가 보뜨와 함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