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맑음 May 10. 2020

취업에는 돈이 든다.

유전유업(有錢有業)-.

한 달 전, 끊임없는 서류 낙방에 공기업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공기업은 블라인드이니까. 서류라도 붙고 싶었다. 아니, 사기업 서류를 쓰는 게 겁이 나고 싫어졌다는 것이 조금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공기업은 내가 노력하면, 노력만 한다면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좋은 기회에 (여전히 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관심에 없었던 시민단체에서 근로기준법을 배워 활동할 수 있었고, 그 기간이 내가 가진 경력 중에 가장 오랜 기간이었다. 처음에는 얕게나마 가진 근로기준법에 대한 지식이 재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그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서류 낙방의 원인이 나이 때문만이었다면, 변변치 않은 경력 때문만이었다면, 이 정도의 탈락률을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자기소개서를 봐주신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판단이었다. 어쩌면 내가 거절되는 이유 중 하나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없었고, 대기업은 지방대 어중간한 성적, 해외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은 나에게 처음부터 자리가 없었다. 공기업을 선택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퇴사 후 퇴직금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돈을 들고 취업아카데미를 찾았다. 늦은 나이, 조금이라도 삐걱거리고 싶지 않아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아카데미에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부터, 퇴근 후 공부하러 오는 직장인까지 다양하고, 많았다. 아주, 많았다.

직장인들을 보며, 나도 조금 더 버텨볼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다가도, 조금이라도 빨리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겠다,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못됐게도, 대학생들을 보면 질투 같은 것을 느낀다. 나도 첫 시작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작했다면 지금 조금은 달랐을까. 어쩌면 조금 달랐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이 결코 최저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서른이 된 어른(이라는 강박이 있는 나이)이 하기에는 철없다는 생각에 얼른 지워버린다.


다만, 취업에도 빈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서럽다.

가진 재산을 털어 아카데미의 기한 없는 수강권을 끊었으니, 이제 생활비만 야금야금 사용하면 된다 싶었는데, 이런. 준비를 해야 할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 그리고 강의. 옷과 음식은 안 입고 안 먹어도 책과 강의는 큰 고민 없이 잘 긁어버리는 지적 허영심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민이 정.말. 많이 되었다. 나, 이제 진짜 돈이 없는데.

강의가 꼭 필요한 걸까,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길, 바라며 공들여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강의 안내에, 결국 카드를 긁어버렸다. 촤악. 내 시간과 조금이라도 붙을 수 있는 확률을 몇 푼의 재산과 교환했다. 그 뒤는? 될 대로 되라지.


나이 서른. 결코 불평을 하고 싶지 않다. 이 나이까지 모아둔 돈이 고작 집 보증금으로 들어가 있는 몇 푼뿐인 한심한 인생이라고 나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가끔 탓한다, 나를.) 다만, 취업에 돈이 드는 현실이 슬프다. 몇 안 되는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인생들이 서럽다. 돈이 없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는 현실들이 서럽다.

졸업 직후 나는, 아마 불확실한 것들에 수많은 강의료와 책값을 지불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겁이 많고 마음이 참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공부해야지, 생각이 들 정도까지는 되었다.(할 수 있을까?) 그런데 또 다른 '나'들은?


나는 결코 '좌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시민단체? 시에서 미취업 청년을 취업시켜준다고 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관심 없었다. 예전에는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면 뭐든 얻을 수 있겠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열심히'가 청춘의 미덕이라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공기업 준비를 한다는 사람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한다. 어디까지 열심히 해야 청춘들은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열심히'하면 정말 밀려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나는 이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등바등 살아야겠다. 글을 쓸 시간이 어디 있나.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나. 밀려나지 않으려면, 사회에서 버림받지 않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면, 나는 남들과 경쟁하며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게 정말로 내 숙명, 인가보다.






작가의 이전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