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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맑음 Jun 03. 2020

자아 존중감에도 종류가 있다.

차이가 아주 아주 큰

에드워드 데시는 자아 존중감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아 존중감과 조건부 자아 존중감. 둘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크나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자신 행동에 대한 평가로 인해 자기 가치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자아 존중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면 자아 존중감은 온데간데없이 박탈감과 자기 경멸감이 남는다.


우리 집이 정말 가난했는지, 여전히 가난한 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엄마는 지인을 통해 나에게 터치식 휴대폰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그보다 어릴 적에는 꽤나 값나가는 다이어리도 곧잘 사다 주셨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어린 언니와 나에게 돈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매일을 일 년 같이 싸우셨고, 그 이유는 '돈'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돈이 무서웠다. 값나가는 다이어리를 가지고도, 요구르트 회사 캐릭터가 박힌 우산이 창피해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캐릭터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재빨리 돌리며 학교에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자라며 원하는 것을 떼써본 적 없는 나에게 엄마는 늘 좋은 것으로 사다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는 엄마가 원하고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값나가는 신발이 몇 켤레가 있다.


하지만 언니는 달랐다. 언니도 크게 떼를 쓰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것은 요구했고, 얻었다. 서울에서 보증금이 필요했을 때, 아마 나는 '마땅한 집이 없다' 둘러대며 고시원을 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니는 당당하게 받아냈고, 지금은 매달 엄마에게 용돈을 드릴만큼 잘 컸다.

결단코 언니의 첫 시작은 언니 것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일을 쉬고 있었고, 나는 계약직 주제에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중이었기에, 적지만 나도 언니의 시작을 도울 수 있었다.


생색을 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마) 아니다. 다만 언니로부터 내려진 내 평가에 대한 적극적 항변이다. 절실함이 없다며, 스스로 하는 힘을 못 길러줘서 미안함을 느낀다며.

내가 가진 조건부 자아 존중감이 흔들렸다. 내가 그런 평가를 받아 마땅한 삶을 살고 있나?


필리핀 교환학생의 기회가 있었다. 구체적 계획도 없이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잘못의 비중이 크지만, 그놈의 돈이라는 것도 내 발목을 잡은 이유 중 하나다. 회사에서 기회가 되어 몇 개월간 미국 생활을 하고 온 언니에게 많은 돈이 들었다고, 아빠가 얘기하던 게 떠올라 걱정이 되었다. 필리핀에 가기 위해 등록금에 비행기 값까지. 학비를 대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언니의 현재는 언니 것만이 아니건만. 철없이 자란 동생이 되어버린 게 억울하다. 그래서 분노했고 흔들렸고 슬펐다.



진정한 자아 존중감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지지이다. 조건 없이 응원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사람은 마땅히 그런 자아 존중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자격이 있다. 그게 에드워드 데시에게로부터 배운 정언이다. 사실, 언니의 평가가 중요할 이유가 없다. 자아 존중감이 흔들렸다면, 바로 세우면 된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딨으랴. 자기 연민의 감정은 대부분 건설적이지 않게 작용할 뿐.


조카가 생긴다면 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율성을 존중해주며, 싹이 밟히지 않게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지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배려 없는 언니에게서 조카를 지켜내야겠다.ㅎ


그리고 다 자라지 못한 내가 있다면. 안아줘야겠다. 나이 서른이라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좋겠다. 철없고 어린 서른이라도 괜찮지만, 그래도 그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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