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유일한 취미이자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영화보기이다. 서울이 왜 좋냐고 물어볼 때면 늘, 영화관이 가까이 있어서!라고 가장 먼저 대답하곤 한다. (서울 아니면 영화관이 없는 줄 아는 시골 사람)
그런 내가 많이 참았다. 코로나 사태에 영화관이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만, 가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오늘, 드디어 영화를 보러 갔다! 아니 이 시국에 영화를?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마냥 조심스러울 정도로 아직 코로나 사태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이해를 구한다. 기억해주길,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내가 서울에 사는 중요한 이유라는 것을.
몇 달 만의 나들이가 조심스러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바로 취준생이라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기업을 가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궁금해졌다. 공부를 하는 나와 같은 그들은, 영화는 볼까? 아니, 다른 취미생활, 문화생활은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영화를 보고 나온 그 사이에, 답변을 주고받는 카톡방에 수 백통의 톡들이 쌓여있었다. 온갖 수학 기호, 이해하는 게 아니라 외워야 한다는, 말이 되지 않는 '모듈'문제들. 톡을 열어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 인간지수는 안녕하냐고. 무서워서 못했다. 아니, 공부를 하기도 바쁜 시간에 영화를 본다니, 제정신이야?라는 답변을 받을 것만 같았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문제로 시끄럽다. 공시생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고 슬퍼했다. 글쎄,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정확한 상황과 과거 사례들을 면밀히 살펴봐야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라고 답할 것 같다.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을 묻는다면, 비정규직의 정규화에 찬성하는 쪽에 가깝다. 대우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는 비정상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돌 맞으려나?)
그럼에도, 나는 공시생이며, 공시생의 분노와 울부짖음에 공감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답게 살고 있지 못한다. 어느 국회의원 말처럼,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폄하되기엔, 우리는 너무 힘겹다. 수백 미터의 줄 끝에, 내 차례가 오기는 오는 걸까, 보이지 않는 출구, 저 어딘가에 있긴 한 것 같은 출구를 향해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언젠가 차례가 오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버텨보겠는데, 어쩌면 내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끔찍하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해야. 이 험난한 세상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 문과 나부랭이에 갈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찾지 못한 채.
오늘도 힘겹다. 경영을 끝냈으니 이제 회계를 하고 재무도 해야지. 아니, 한국사랑 병행해야지. 친구는 가산점 위해 재경관리사를 준비한다던데, 나도 해야 하나? 등등 이러한 문제들로. 그럼에도 돌아설 길이 없으니 그저 꾸역꾸역 가보자,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공허한 질문을 해본다. 너, 인간지수는 안녕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