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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23. 2024

캠핑과 계획


금요일 아침,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에 송도에 있는 캠핑장 취소분이 나와서 예약했는데 내일 부모님 모시고 함께 와서 고기를 구우면 어떻겠냐고.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고. 몸만 오면 된다고.      

느닷없이?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요즘 몸이 좀 피곤해서 다음에 가겠다고 변명하며 끊으려는데 조카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안 온대?”

아이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 아빠가 통화하는 걸 듣고 있었나보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동생이 어렵게 예약한 건데 나 하나 편하자고 이기적으로 굴었구나.

다시 전화해서 가겠다고 했다.      


토요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캠핑장으로 갔다.

화창하고 시원한 초여름 날씨였다.

아빠는 야외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며 싱글벙글.

다섯 살 조카 찬율이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고모 고모부 할머니 할아버지 만날 생각에 진짜 기대했어요.”

이 아이는 이런 멘트를 어디서 배웠을까.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은 캠핑장 근처 숲길에 맨발 걷기를 하러 갔다.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조카들 놀이 담당. 

베드민턴 채와 축구공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사라졌다.

동생 부부와 나는 야채를 씻고 식탁을 차리고 숯을 피웠다.

양고기, 항정살, 목살, 삼겹살.

동생은 부지런히 고기를 구웠다.    

 

집 나갔던 가족을 다시 불러 모았다.

부모님과 조카들은 부지런히 고기를 먹었다.

고기보다 와인을 좋아하는 나와 동생 아내는 소비뇽 블랑을 마셨다.

하정우 와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와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와인을 마시다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내가 좋아하는 와인 품종이 뭔지 알아?”

“카베르네 소비뇽?”

“또”

“소비뇽 블랑?”

“또”

“샤도네이?”

“또”

“아, 그게 뭐더라. 르누 아르?”

“너 설마...피노 누아 말하는 거야?...”

“맞아. 그거.”     


동생이 가져온 와인은 달달해서 크림빵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햇살은 좋고 고기와 와인은 맛있고. 모두가 행복해졌다.

좋은 음식과 좋은 상대방. 

둘 중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 

둘 다 있다면 최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가족이 다 같이 모이면 참 좋은데 모이기 전까지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원수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음식점을 예약하거나 동선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이번처럼 갑자기 약속을 잡는 것도 싫다.

최소 일주일 전에는 이벤트를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좀 더 설렁설렁해지고 싶다.

내가 짠 스케줄에 사람 혹은 사건이 훅 치고 들어와도 유연하게 반응하고 싶다.

요즘은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마다 생각한다.

죽을 때 나는 무엇 때문에 후회할까?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일들이 사소해지고, 사소한 것 같은 일은 무게가 느껴진다.     


좋은 선택이 좋은 오늘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다글은 삶을 단 한 발자국도 앞서지 못한다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양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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