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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25. 2024

미용 주치의


단짝 친구 은진이를 만났다.

두 달 만에 만나는 거라 할 얘기가 많았다.

영화 <듄2>의 주인공 티모시 살라메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주인공인 카야의 외로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가족 돌봄의 어려움과 감사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소하지만 중요했던 일상의 사건을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주제는 이제 미용으로 넘어갔다.

은진이는 내 전담 외모 주치의다.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눈 밑이 건조한 것 같아 엄마 아이크림을 몰래 발랐다는 은진이는 미용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로션과 파우더 하나로만 인생을 살아왔기에 은진이의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며칠 전부터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게 생긴다고 했더니 은진이는 즉시 처방을 내려줬다.


“60초 세안법을 해봐.”

“그게 뭔데?”

“클렌징 폼에 거품을 내서 60초 동안 얼굴 구석구석을 살살 문지르는 거야. 얼굴에 뭐가 생기는 건 너가 클렌징을 너무 대충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클렌징 폼만 잘 하고 씻어내면 돼?”

“그전에 클렌징 오일로 피지와 먼지를 제거해야돼.”

“오일이 피지를 제거해 줘?”

“내 코 봐봐. 블랙 헤드 없지? 피지는 기름이니까. 기름이 기름을 녹이거든. 클렌징 오일로 먼저 닦아내야 돼.”     

일리 있는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며칠 전 황사가 왔을 때부터 피부에 두들두들한 것이 올라왔다. 

그때 세안을 좀 더 꼼꼼히 했어야 하는데 평소처럼 대충하다 보니 피부에 노폐물이 남아 트러블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클렌징은 피부 방어막을 제거한다.’ VS '이중세안으로 피부 노폐물을 깨끗하게 지워야 한다.’

피부 관련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 의견이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둘 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전자를 선택했고 그 후부터 약산성 비누만으로 세안을 해왔다.

하지만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 걸 보면 황사 철에는 이중 세안이 필요할 것 같다.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생기는 것 같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주치의께서 또 다른 처방을 내려주셨다.


“두피 마사지를 해봐. 두피도 근육이라 두피가 튼튼해야 나머지도 좋아지거든. 근육에 힘이 없으면 어때? 처지지? 두피도 똑같애. 두피가 처지면 얼굴도 처지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샴푸한 후에 굵은 소금으로 두피 각질을 마사지하고 헹궈내. 귀찮으면 일주일에 한번만 해봐. 틈틈이 빗으로 머리도 빗어주고. 마사지 롤로 머리도 마사지하면 좋은데. 없으면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거나 눌러줘.”     


듣고 보니 역시 일리 있는 설명이었다. 

머리숱이 많다는 이유로 두피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긴 머리를 제대로 빗어 본 적도 없다. 

두피가 피부에도 영향을 미칠 줄이야. 

은진이는 림프관이 지나는 부위에도 마사지 롤로 틈틈이 마사지를 해서 독소를 빼주면 좋다고 했다.


정성을 들인만큼 예뻐진다는 말은 은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얼굴이 봄꽃처럼 화사했다.

그래, 하는 데까지 해보자.     


은진이와 무인양품에 갔다. 

클렌징 오일을 찾은 후 친구 승낙을 받아 구입했다.

인터넷으로 두피 마사지 빗도 주문했다.

60초 동안 세안도 했다.

다음날 보니 피부가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새 머리빗으로 머리카락을 꼼꼼히 빗으니 두피가 시원하다.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빗었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찰랑거린다.

이 쉬운 걸 왜 여태 안했을까.


그 밖에도 은진이가 깨알같이 조언해준 괄사 마사지나 곡물 팩도 내겐 너무 어려운 도전이다.

소금으로 머리 감는 것도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대신 흑설탕과 꿀을 섞어 스크럽을 만든 후 T존을 중심으로 살살 문지르며 각질을 제거해 줬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각질은 죽은 세포다. 

몸의 때(각질)를 밀지 않는 것처럼 얼굴 각질도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여드름 피부가 아니라면.

정 하고 싶다면 한 달에 한번이면 족하다.

세포가 죽고 재생되는 데 28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얼굴도 마음처럼 신경 좀 쓰며 살아야겠다.

그냥 살기엔 너무 좋은 시절이니까.          



레이스로 장식이 된 이 화려한 검은 의상도 그녀에게는 조금도 돋보이지 않았다그것은 그저 틀에 지나지 않았다

돋보이는 것은 오직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동시에 쾌활하고 생기 넘치는 그녀 자신뿐이었다.

<안나 까레리나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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