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Apr 26. 2024

첫 공연


한 달에 한 번 밴드 레슨 해주시는 선생님이 말했다.

“다 같이 연습한지 6개월 만에 이 정도 퍼포먼스면 기적이에요. 공연 하셔도 되요.”     


우여곡절 끝에 공연 날짜가 잡혔다.

범계역에 있는 뮤직홀을 빌렸다. 30명 정도 인원이 앉을 수 있는 규모였다.

평일 저녁 하루를 빌리는 데 50만원이었다.

홍대에서는 그 정도 규모와 음향시설을 선택하려면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공연을 앞두고 팀원 중 몇 명이 회사에서 맡고 있는 프로젝트 진행이 잘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 

야근하느라 연습도 눈치를 보며 참여해야 했다.

공연 전날에는 프로젝트 올라간 게 오류가 나서 공연을 취소해야 되느냐 마느냐 기로까지 갔다.

공연 당일 오전이 되어서야 조용히 공연을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다.

직장인이 취미 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찜닭을 먹으며 서로의 연주를 응원했다.

틀려도 괜찮다며 즐겁게 그 순간을 즐기자고 다짐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 같이 첫 곡을 연주하는데 일렉 기타 줄이 끊어졌다.

공연하다 기타 줄이 끊어지면 어떡하냐고 다들 농담처럼 말했는데 농담이 실제로 벌어졌다.

기타 줄을 가는 동안 보컬은 자연스럽게 밴드 소개를 했다.     


한 두 곡이 끝날 때마다 팀원들이 한명씩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어쿠스틱 기타를 맡은 남편은 조성이 바뀌는 곡이 있다면 조율해야 했다.

또다시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고 다 같이 전주 부분을 치자마자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화음이 전혀 맞지 않았다.

우리는 연주를 멈추었다.


객석에서 듣고 있던 레슨 선생님이 황급히 남편에게 다가갔다.

남편이 팀원이 관객에게 얘기하는 동안 다음 곡 코드 조율하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거다.

나중에 남편은 고백했다.

무대에 올라갔는데 의외로 하나도 떨리지 않아서 나는 무대 체질인가보다 생각했다고.

알고보니 자기가 아예 정신을 놓고 있었다고.     


드러머도 상황은 마찬가지.

자기는 열심히 쳤을 뿐인데 스틱 하나가 허공을 가르고 일렉 기타 옆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준비해 간 스페어 스틱 역시 어느 순간 공중을 날랐다고.


“실제 무대에 서면 실력의 반밖에 보여드리지 못할 거예요.”

공연 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박자를 놓치고, 음정은 틀리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그 와중에 무대에서는 스모그 머신이 안개를 내뿜고 조명은 반짝거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공연이 끝났다.

직장 동료들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해내긴 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공연 준비를 하며 늘 즐겁지는 않았다.

똑같은 곡을 몇 개월간 합주해야 하는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각자가 연습을 열심히 해오지 않아 합주가 삐걱댈 때의 아쉬움도 있었다. 

몸이 아픈 날에는 약을 먹고 연습에 참여하기도 했다.

남편은 회사에 일이 많아 저녁도 먹지 못하고 헐레벌떡 연습시간에 맞춰 오는 날이 많았다.

팀원들마다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모여 연습을 하고 소리를 맞추었다.

     

밴드가 유지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구성원들이 여러 악기가 어울리며 화음을 차곡차곡 쌓아갈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아름다운 소리를 직접 귀로 들으며 악기를 연주할 때 왠지 모르게 기쁨이 솟아난다.

악기들이 서로 합이 맞을 때, 그 사이로 울려 퍼지는 보컬 목소리는 또 얼마나 감미로운지.

선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음악이 절정으로 흘러갈 때 팀원들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저절로 펼쳐진다.


음악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바람과 같다. 

순간에 머물지 않으면 느낄 수 없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악기를 연주한다.

공기 속에 진동이 울려 퍼질 때 그제야 우리는 음악의 실체를 두 눈으로 보며 생각한다.      

아름답구나.          


음악을 듣고 나면 내 손에 무엇이 남을까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음악은 내 고막을 흔들고는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그러나 음악은 사라지는 행복이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양창모     

매거진의 이전글 미용 주치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