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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r 03. 2024

무너진 자존감과 못생겨진 마음

모든 터널에는 출구가 있다.


 어젯밤, 아내가 나에게 사과했다. 눈물도 조금 흘렸다. 아내의 회사에 책을 낸 동료가 한 명 있는데, 어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그가 쓴 책을 읽다가 5분도 안 되어 내 생각이 나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고 했다. 책 제목은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였고, 직장생활 도중 공황장애를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쓴 책이라고 했다. 왜 나한테 미안했냐고 물었더니, 정신과에 다닌다는 게 자기는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핸드폰 화면 너머 우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괜찮아.’라는 대답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사실, 진짜 힘들었거든.


 그래도 상황이 그러니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다. 작년 여름, 나는 정신과에 통원 치료를 다녔다. 우리에게는 돌이 채 안된 딸이 있었고, 아내는 하루 종일 젖먹이 아이를 보느라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라는 사람마저 저러고 있으니, 아내 역시 속이 탔을 것이다. 언젠가 아내가 짜증 섞인 말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약도 타서 먹고 있잖아. 그럼 나아져야 할 거 아니야. 왜 그래.” 본심은 아니었겠지만, 사실 그 말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에 변변한 대꾸도 못했던 것 같았다. 맞아, 병원 다니면 나아야지, 내가 가장인데 어떻게든 빨리 나아야지. 하고 오히려 자책하는 마음이 컸다.


 퇴근 무렵이면 막 울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마음대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방광은 꽉 찼는데 오줌이 안 나오는 환자처럼, 차오른 눈물샘을 양 볼에 매단 채로 집에 오곤 했다. 그런 날 밤이면, 불 꺼진 거실에 식탁 등 하나만 켜고 늘 같은 책의 같은 부분을 찾아 읽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제6장 ‘꽃 핀 쪽으로’를. 그러면 거짓말처럼 눈물이 퐁퐁 쏟아졌다. 눈물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성분이 있다고 그랬나. 그 때문인지 그러고 나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병원은 회사 건너편에 있는 가까운 곳으로 갔다. 원장님은 나와 같은 성에, 아내의 이름을 쓰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냥 여타 개인 병원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왔을까 싶을 정도로 평온해 보이는 대기실의 사람들, 깔끔하게 정돈된 인테리어와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의학 전공 서적들. 다른 점이 있다면, 처방전을 주지 않는다는 것과, 직접 조제한 약을 아무 글씨도 새겨지지 않은 감색 부직포 봉투에 담아준다는 것뿐. 생각했던 것보다 의료보험도 잘 적용되어 진료비도 비싸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혼자 이겨낼 만한 에너지가 전혀 없으시네요. 회복탄력성이 바닥까지 떨어지셨어요.” 처방받은 약은 아침에 복용할 기분을 업 시켜주는 알약과, 자기 전에 먹는 수면제, 그리고 사람 많은 곳에서 발표하거나 할 때만 챙겨 먹으라는 약 조금.


 의외로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수면제였다. 아이가 새벽 서너 시쯤 울면서 깨면, 나 역시 옅은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한 채 수많은 걱정들을 하다가 벌게진 눈으로 출근하곤 했는데, 그 때문에 기력이 많이 쇠해졌던 터였다. 어느 정도 수면 시간이 확보되자, 체력이 회복되었고, 그 이후로 다른 약들도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은 일시적으로 나의 호르몬을 조작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과거의 나와 단절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평가를 받았든 간에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자.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고, 내게 실망했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대까지 모두 다 맞추지는 말자.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가을이 지나면서 새로운 팀에서의 업무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영원히 멀 것 같았던 구성원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옆 자리에 앉은 후배가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좀 불안해 보이셨는데, 지금은 한결 나아 보이세요.”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정신과에 발길을 끊게 된 것도.


 그간 오래도록 글을 남기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올린 글들을 읽어볼 때면 이게 정말 내가 쓴 글인가 할 정도로 낯선 필체와 기운을 느낀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 예전 모습도 낯설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사람 알아가는 걸 좋아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내가 정말 그랬을까. 가끔 나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화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닐까 생각한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들이 그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아니면, 그 이전부터 조금씩 주어졌던 자극들이 나도 모르는 새 이렇게 바꾸어 버린 걸까. 어느 쪽이든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내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그 이후로 내 마음이 못 생겨진 건 확실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을 겪으면서 그렇게 되었다며 신경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하다고 또 한 번 사과했다. 그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의 나’라는 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냥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있을 뿐, 마음이 못 생겨진 지금의 나도 오늘 여기에 현존하는 ‘원래의 나’는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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