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Aug 10. 2018

오늘, 유산.

아픔, 공감 그리고 연대


네, 심장이 뛰지 않네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건만, 어제에 이은 2차 초음파 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공식적으로 유산 판정을 받았다. 병원을 걸어 나오며 아내는 서글피 펑펑 울었다. 결혼 후 2년 반. 꾸준히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별다른 원인 없이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두 번의 인공 수정 끝에 아가가 우리에게 왔다. 임신 확인하고 24일.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내와 나의 유전자를 절반씩 받은 우리 아가. 불과 3일 전까지 초음파로 심장소리까지 들려준 우리 아가. 그렇게 아내의 뱃속에 고작 7주 하고 하루를 머문 6.5mm의 이등신 태아 똥돼지(태명)는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와 작별했다.


 저녁 무렵, 양가 부모님들께 애써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고 아내는 또 울었다. 이 번에는 나도 같이 울었다. 그렇게 부둥켜안고 우린 한참을 울었다. 고작 수박씨만 한 태아지만 심장이 뛰고 생명이 붙어있던 녀석이었는데, 세상의 빛도 못 보고 사라졌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가엽게 느껴졌다.




 얼마 전, 회사 동료 한 명도 같은 일을 겪었다. 당시 유산 소식을 듣는 순간에는 담담했다고 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없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비록 작은 세포 덩어리지만 생명의 싹이었는데, 그도 그게 너무 마음이 저렸다고 고백했다. 당시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는 “그래 그랬구나...”하며 위로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미안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7년 노력 끝에 겨우 시험관 시술에 성공한 선배의 아기가 임신 4개월 만에 기형아 판정을 받아 중절을 했을 때도, 내 결혼식에 오지 못했던 지인이 “미안해, 사실 그때 나 유산했었어.”라고 말했을 때도, 나는 그들의 아픔을 소상히 알지 못한 채 말뿐인 위로를 건넸다. 이런 경험은 겪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마 그들도 그걸 알고 있었으리라.


 하물며 얼굴 형태도 채 확인을 못한 태아를 잃은 것도 마음이 이리 저린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힘겨운 항암치료 끝에 하늘나라로 간 소아암 환자들의 부모들, 열여덟 꽃다운 자녀들을 보내야 했던 세월호 엄마 아빠들, 그리고 식어가는 새끼의 몸을 필사적으로 핥으며 몸부림치던 어린 시절 옆 집 개 촐랑이까지도. 오늘 나의 아픔을 그들의 상처에 감히 비할 수는 없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헤아리지 못했던 다른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감싸 안아 보았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희로애락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다가가는 공감과 연대의 과정.

 살과 피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보편적으로 겪는 사랑, 만남, 갈등, 성장 그리고 무수한 이별들,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 슬픔, 분노와 같은 공유된 감정을 통해 인간 구성원임을 체감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분노와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줄 알게 되는 것.


 산다는 것은 그런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이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경험을 찾아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천 권의 책을 읽고, 5개 국어를 마스터하여 부러움을 사는 버킷리스트 인생보다 더 값진 것이 아닐까.




 나와 아내의 작은 아가는 오늘 허망하게 우리를 떠나갔지만, 우리에게 깨달음과 용기를 남겼다. 오늘의 슬픔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다시 아이를 가지게 되면, 또 출산, 양육, 애정과 공유된 희로애락을 느끼며 더 큰 연대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리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마음껏 슬퍼하되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가는 분명 우리 부부에게 처음 온 단 하나의 특별한 생명이었지만, 오늘 이 슬픔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녕. 아가야.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요’는 정보 습득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