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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Oct 09. 2018

사형을 만나다.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내게 없는 것


 사돈댁 사형(査兄), 그러니까 제수씨의 오빠는 대단한 사람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몇 년 전 피부과를 개원, 현재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연예인과 셀럽들도 찾는다는 꽤 실력 있는 피부과 원장이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 있어~”라고 할만한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어제 동생네 조카 돌잔치가 있어서 오랜만에 사돈댁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옆 자리에 앉은 사형의 휴대폰 뒷면에 앞치마 두른 본인의 캐릭터가 새겨져 있길래 이건 뭐냐고 물었다.


 “아, 최근에 제가 작은 고깃집을 열어서요.”


 그는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담으며 말했다. 평소 동생을 통해 카페, 럭셔리 카 튜닝샵은 물론 본인의 이름을 붙여 화장품까지 제조, 수출까지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그 고깃집 역시 평범하지 않은 가게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그머니 물었다.


 “아무래도 그냥 평범한 식당은 아니겠네요.”


 라고 묻자 그는 엷게 웃으며 털어놓는다.


 “평소에 요식업을 해보는 게 꿈이었어서요. 그동안 쌓아온 인맥들을 좀 모셔서 가게를 오픈했어요. 소는 직접 고기만 보는 팀을 따로 꾸려서 전국을 다니죠. 농장, 사료, 연령, 생김새들을 보고 최상급 고기만 취급해요. 저도 메뉴 구성을 보러 가끔 다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사돈지간이라 예의를 차리느라 그런지 그의 말은 늘 간략하고 겸손하다. 이에 부연설명을 하는 건 늘 동생과 제수씨다. 어제 방문한 그의 식당에서 배우 누구를 보았다느니, 사형이 운영하는 뷰티 블로거에 팔로워가 10만이 넘는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면 그는 겸연쩍은 듯 말을 돌린다.


 “여기는 탕수육이 맛있어요. 가끔 여름밤에 오면 가성비 좋은 망고 빙수도 팔고요.”




 <지대넓얕>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채사장’은 그의 또 다른 저서 <시민의 교양>에서 세상에는 네 가지 직업만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생산수단이 없음)
① 임금노동자: 자본가에 고용되어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들
② 비임금노동자: 자본가에 고용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들(보통 전문직)

(생산수단이 있음)
③ 사업가: 생산수단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
④ 투자자: 생산수단에 자본을 대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채사장, <시민의 교양> 中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네 가지 직업이 어떤 역학 관계를 갖는지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생산수단’의 점유와 교육/훈련에 의해 이러한 직업들이 계급화되고 분류되는 것도 맞는 설명이지만, 나는 이러한 직업 선택이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앞에 언급한 사형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수도권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와 본인 스스로의 노력 덕에 서울 모 대학 의대에 입학한다. 200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그는 고수익 '② 비임금노동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자, 청운의 꿈을 품은 그의 앞에는 많은 길이 열려있다. 애초부터 안정된 직업을 좇아 의사가 되었으니, 굳이 개업의가 되지 않더라도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의사로 재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선택하면 의사지만 '① 임금노동자'가 된다. 물론 그 후 삶은 매우 평탄할 것이다. 병원 측에서 값비싸고 보험이 안 되는 시술을 환자들에게 권고하라며 가끔 압박을 넣지만, 오후 5시에 퇴근하여 여유로운 저녁을 보낼 수도 있다. 가끔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사주는 술을 마시고, 의료기기 업체 사장이 대는 돈으로 골프장에도 간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의사가 된 초반에는 모은 돈도 없고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 소속된 '임금노동자'의 길을 다소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성과 실력에 단골 환자들이 생기면서 점차 개원에 대한 욕망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사업가 마인드를 가진 그는 단골 환자들과 지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병원을 개업하기 이른다. 바야흐로 '③ 사업가'로의 직종 전환을 한 것이다.


 몇 년 후, 그의 병원은 더욱 잘 되었고, 셀러브리티들도 찾을 정도로 강남의 유명한 피부과가 된다. 그간의 투자금은 모두 회수하였고, 이제 순이익이 나는 시점. 그에게 또 하나의 선택의 기로가 있다. 이제 병원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매입하여 돈이 돈을 벌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그는 이익 잉여금으로 임대사업을 시작한다. '④ 투자자'가 된 것이다. 병원 운영은 다른 고용 의사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VIP들만 조금씩 진료하며 가족들과 해외여행이나 다닌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병원이 궤도에 오르면서 평소에 관심이 있던 새로운 분야를 파기 시작했다. 자신의 피부과 진료 노하우를 바탕으로 화장품을 개발했다. 홍보 툴로 블로그를 열었고, 시장을 경험해 보니 해외시장이 유망할 것 같아 중국에도 진출을 시작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자동차와 요식업에도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업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저 사람은 의사잖아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 의사라는 특성상 사업을 말아먹어도 생계를 유지할만한 수단(의사 면허)이 남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는 그가 풍부한 ‘호기심’과 ‘추진력’ 그리고 리스크를 감내하는 ‘용기’, 즉, ‘사업가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타이틀을 빼면, 그는 분명 ‘사업가’라는 호칭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④ 투자자'가 되는 것은 타고난 ‘부’로도 충분히 가능하니 논외로 하고, '①② 노동자'와 '③ 사업가'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 '사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안정보다 모험을 선호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드물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직에 묶여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관심분야를 찾아 작은 것부터 실행해보는 사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사실 나는 사형이 부럽다. 위에 열거한 기질들은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자'나 '투자자'의 길을 걸으며 안정과 부를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모험을 택한 용기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과 적성도 다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모든 이들이 사형과 같은 사업가 마인드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다니며, 나는 내가 생각보다 정형화된 틀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나는 남들보다 기발한 것들을 잘 생각해내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단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건 '쿨'하고 ‘멋져 보였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이길 바라왔던 것에 더 가까웠다. 실제의 나는 학교에서 한눈 팔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하는 순종적인 학생이었고, 속으로는 반발하기도 했지만 대개 어른들의 규율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겁 많은 아이였다. 그러니 가이드와 프로토콜이 명확하고, 책임 범위가 주어져 있는 회사 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35년 내 인생에서 도전적인 ‘사업가 마인드’가 발현된 적은 전무했었다. 아마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0대나 20대 때처럼 어떤 것이 멋있어 보인다 해서 그게 나랑 잘 맞을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는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요즘 ‘퇴사’ 열풍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임금노동자'의 삶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퇴사하겠다고들 아우성이다. “난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글들이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걸 보면, 마치 직장만 계속 다니면 루저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노동과 시간을 팔아 살아가기에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너무나 암울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 같이 대다수의 심약한 사람들은 사직서를 품 안에 숨긴 채 그냥 임금노동자로 남는다.


 하지만 진짜 사업가 마인드를 가진 직장인들은 요즘의 ‘퇴사 열풍’과 관계없이 자기 일을 꿈꿔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유망한 아이템에 관심을 갖고, 회사 내에서 필요한 자원과 커리어를 쌓으며 인맥을 만든다. 사실 오늘날의 ‘퇴사 판타지’는 사회 불평등과 취업난, 그리고 과도하게 부풀려진 스타트업 붐 속에서 오히려 나처럼 ‘골수 모범생’으로 자라온 이들을 먹이로 삼는 듯하다. 이들은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순종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그 보상이 공정하지도, 달지도 않다고 느끼는 순진한 젊은이들이다. 이러한 이들이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현혹당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결국 자기에 대한 성찰과 충분한 고민이 전제되지 않은 퇴사는 대개 뼈아픈 자기반성과 조직으로의 회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휴일 오후, 카페에 앉아 다시 한번 사형을 생각한다. 아마 동생네 큰 행사가 있지 않는 한 그를 만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몇 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는 또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호기롭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직장인으로 남아 여전히 부러워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개인이 받은 달란트는 저마다 다르고, 인생은 각자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비록 타인의 삶에 비해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섣불리 동요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시기에 더 필요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남과 다른 나고, 갖지 않은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 내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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