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자는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회사 일로 거물급 손님을 맞은 적이 있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높은 위치에 걸맞게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실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둘 뿐인데, 족히 서른 명은 되는 사람이 자리에 함께 했다. 급이 높은 열 명 정도는 만남 장소 안에,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단순 수행과 영접을 담당하는 이들은 바깥에.
대의 성사를 위한 비즈니스 수행은 신나는 일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보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처음부터 썩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그 인물은 물론 그가 운영하는 기업이 사회적, 윤리적으로 많이 비판을 받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시각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번듯한 정장과 구두를 신고 하는 일이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것은 노예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미팅이 끝날 때까지 그런 생각은 숨기고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의전에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을 파는 일이다. 때로는 원치 않는 일에 동원되어 인생의 일부를 제공하며 대가를 지급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곧 남의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장은 알바의 시간을, 팀장은 팀원의 시간을, 갑은 을의 시간을, 그리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돈을 내고 다른 용역의 시간을 차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다. 유한한 인생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권력관계를 구성하고, 타인의 인생을 차용하는 것이다.
오늘, 힘 있는 두 사람을 위해 서른 명의 사람들이 인생의 일부를 팔았다. 이 만남에 의미가 있었다면 그들의 시간 역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권력을 쥔 자가 그 힘에 걸맞은 인품을 갖지 못한다면, 그 밑에서 영혼 없이 부림 당하는 사람들은 노예와 같을 수밖에 없다.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자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그저 시간만 앗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