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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별 Feb 23. 2021

단 하나를 감싸는 껍질의 깊이

영화 <빛과 철> 2020, 배종대

치킨게임

이명이 머리를 찌른다. 몸부림치게 되는 고통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위세를 과시한다. 하나에서 뻗어나간 수많은 실들이 묶이고 엉키고 때로는 조이며 남겨진 이들의 삶에 감정의 결을 덧댄다. 엮이지 않아도 되었을, 가혹한 계기로 만들어진 그 인연은 흐른 세월이 무심하게 다시금 속을 비집고 파고든다.


궁극적으로는 누구의 잘못인가가 명확하지 않기에 생기는 골의 파동일 테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을 떠나 각자가 지니게 되는 상실감의 크기는 다른 것들을 집어삼킬 정도로 생각보다 거대하기 짝이 없다. 조그마한 생채기만 생겨도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판에, 차마 감당키 어려운 짐이 어깨를 뭉개는 수순으로 이르게 되는 현실은 형용의 의미가 없다.


다시, 그 시작과 계기는 하나다. 허나 그 하나의 진실에 당도하기 위한 겹겹의 여정이 두텁다. 단일 케이스로 치부되는 진실이 종이 몇 장 안으로 녹아내렸을 때, 남겨진 이들은 저마다의 속앓이에 더해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사실의 파편들을 교차시키며 피를 흘린다.


마주할 수 없었던 이와 듣고 싶지 않았던 이가 절반의 의도를 가진 치킨게임을 벌일 때, 이미 두 번이나 자신을 베어가며 속을 펼쳤던 침묵할 수 없었던 이가 세 번째로 또 한 번 그들 앞에서 토로한다. 철 안의 둘 앞에 나타난 맑은 눈, 그리고 그 눈을 밝히는 빛. 아울러 하나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껍질 깎기는 결국 우리의 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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