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2021, 김현탁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단순하디 단순한 말 한마디가 회상의 소매 끝에 닿고 마는 트리거가 되어 터져 나오는 감정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을 때. 두 눈앞에 벌어진 상황조차 믿을 수 없는데 그 상황을 감쌀 힘도 없고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정말 하나도 없을 때.
누군가는 숨기지 않고 감정을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꾹꾹 눌러가며 최대한 꼭지를 잠그기도 한다. 기계들마저 말썽이다. 이 고달프고 고단한 삶에서 그러한 부분만큼은 유려하게 넘어가 줬으면 좋겠건만, 직접 손을 대고 발로 만져줘야 비로소 제 역할을 시작한다.
기계들이 그러할진대 세상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끊을 수 없는 고리를 억지로 끊어버리면서까지 역할을 바스러뜨리는 이들로 인하여, 오늘도 누군가의 어깨 위로는 곱절의 짐이 올라간다. 바라지 않았던 역할일 수 있다.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허나 그 구실들이 친절하게 정당화까지 그려주진 않는다. 이제는 보통의 울타리 안에 녹여내야 할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범위를 생각해 본다. 꼭 빨간색으로 칠하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다. 그 그림을 꼭 붙잡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