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개봉(공개) 영화 '캐릭터' 탑 12
* 개봉(공개)일 순
거대한 상실 앞에서 해낼 수 있는 건 몇 없다. 조각나버린 조각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붙이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런 의미로 세상에 나왔던 게 아님을 깨닫게 된, 흘러감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그녀에게 이제 따수운 바람만이 불어 오길 빌어본다.
올해의 눈물 버튼. 스러져 가는 굳센 그 빨간 눈빛을 마주하는 게 너무나 애통하고 분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매번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또 미묘하게 크게는 생각하지 않았을 인간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영원하지 않음을 아름다움으로 치환시키는 그의 말을 찐하게 새기면서. 아카자 이노옴!
절제와 평상심, 동요하지 않는 단단한 힘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목격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나아갈 원대함을 위하여 약진하는 행보가 무구하게 녹아든다. 아내에게 역전의 찬사를 내뱉게 만든 그의 저력이 진하기 짝이 없다.
더없는 명분을 필두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마주한 사람을, 극 전체를 조율한다. 조급하지 않고, 당황하는 법이 없으며, 실리를 우선시하지만 또 나름의 낭만까지 느끼게 만드는 각별한 묵직함이 일품.
비록 얼굴은 시대에 타버렸지만, 그에 대한 사랑까지 타버린 건 아니기에 마음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내 가슴을 찢는 진실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나지막한 선율에 올라타는 것뿐이다. 시대가 그은 과거와 당신이 쌓은 과오, 두 과(過)를 향한 작별이 휘몰아친다.
형용이 불가능한 존재감에 최소 천 년짜리 감탄사를 보낸다. 짤그랑 거리는 그의 능숙한 텐 링 향연에 한 잔, 순애보가 따로 없는 그의 찐 사랑에 한 잔,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그의 눈빛에 또 한 잔. 양조위를 위하여 건배!
오도독거리는 소리에 이어 고사리 같은 손이 앞을 향한다. 과자로 한 번, 과자로 두 번, 과자로 세 번. 목이 탈 수도 있으니 음료로 네 번. 목을 감싸는 두 손으로, 다섯 번. 지그시 퍼지는 미소가 그 순간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대체한다. '사랑스럽다' 계열의 최상급 표현을 찾지 못한 게 한이다.
악마의 재능이다. 탐욕을 품은 갈망과 선을 넘는 착취의 표본, 폭주하는 인간상, 역으로 심연에 매몰된 악의 대명사. 더 갈 것도 없이 진짜로 미친놈이라는 게 뻑킹 프롸블럼..
그녀에게 믿음이란 합리화나 정당화로 각조차 잡을 수 없는, 섬뜩하리만치 순수하고 악의 없는 결의 믿음 그 자체다. 신아일체(信我一體)이자 신아일체(神我一體)의 경지까지 도달하고야 마는 심오함의 절정에 서있다. 그러니까 증말루 선택받은 게 틀림없지 않을까.
명불허전이다. 빌런 다운 빌런이 무엇인지 칼 같은 빌런학개론을 눈치 빠른 꼬맹이에게 몸소 선보여 주신다. 이만한 공포가 또 있을까? 등장서부터 이미 멋들어진 헌사와 다름없다.
스파이더맨에서는 실없고 어이없는 한낱 도마뱀 아조씨지만, 킹스맨에서는 화려하게 거드름 좀 피우는 빠꾸 없는 아티스트 그 자체다. 주어진 순간을 숨죽이게 하여 덩실거리게 만드는 힘, 이게 바로 '아트'다.
그녀의 언어를 보며, 이제 이 세상에서 전하지 못하는 건 없다 믿기로 했고,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답을 꾹꾹 힘주어 적기로 했다. 덕분에, 닿음의 경이로움과 전해짐의 아름다움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