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개봉(공개) 영화 탑 8
- 다음번이 아닌 이번에 간직하는, 우리의 안녕.
영화 초반 '간식시간' 씬서부터 이미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순행과 역순행이 동시에 진행되는, 몽글몽글한 엔트로피의 흐름이 가득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여지없는 셀린 시아마는 단 72분만으로도 마법을 쏜다.
- 세 번, 세 개, 세 합으로 쌓아 올리는 금자탑.
추억의 힘은 굉장히 쎄다... '그의 일'이라는 신념을 함께 붙들고 대의를 이루어낸다. 본격 자립 챕터에 들어선 그는, 성장의 화두에 마침표를 찍고 눈부신 전환의 활공을 이루어낸다. 앞으로도 쭈우욱 함께 할 우리의 친절한 이웃에게 치얼스!
- 시간 위에 올려진 우리, 섭리에 따를 것인가 섭리를 만들 것인가.
크게 보면 삶이란 우리 앞에 도달하는 물음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답하여 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가웨인이 될 것이며, 어떤 가웨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어떤 가웨인의 어떤 선택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 것인가. 일단 당장 허리띠부터 풀어버리자.
- 과거와 과오를 향하여 휘몰아치는 송사.
짜인 대로 흘러가는 결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비수를 박아야 할까. 왜 그러한 행보를 보이는지 설득하는, 착실하게 명분을 담아낸 서사가 저만치 앞에 함께 앉는 걸 목격하고, 시대 그리고 개인을 향한 응어리진 목소리가 틀과 상관없이 뻗어나가 마침내 마음 가득 울려 퍼지는 그 순간, 형용하기 힘든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 경계를 가로지르는 닿음의 미학.
펼쳐진 환경과 세월의 모진 풍파를 비롯하여 각자의 성향과 사연, 소속과 마음가짐 등 온갖 차이가 빚어내는 수많은 벽들로 둘러싸인 우리지만, 진심이라는 조금은 진부하나 더없이 따숩고 묵직한 언어로 서로에게 진실히 닿을 수 있다. 그렇게 닿아 전해지는 온기에 벽들이 녹아내린다.
- 사무치는 모음(母噾)의 순간들.
혼을 잃고 찍히는 데 불과했던 시간들이, 빨간 조명 아래에서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단 한 장이 감싸주는 형용할 수 없는 온기. 조각나버린 조각들이 모아진다. 이제 한 발짝 더 나아가, 의미가 있고 없고 또한 중요치 않다. 그런 의미로 세상에 나왔던 게 아니니까. 마침내 이어진 다리, 흘러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언제나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거란 관념을 향한 일갈.
온갖 소중한 감정들을 머금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온 나 자신만의 세계가, 서서히 으스러지기 시작한다. 인지의 공포, 반복의 혼란, 무력함의 고통은 그 폐허로의 수순에 더욱더 박차를 가한다. 아울러 그간 늘 몇 발자국 떨어져 서있던 제3자를 끌어내어 체험의 장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곤 함께 마주하는 잎사귀들 앞에서, 다시금 선언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필멸하는 존재임을.
- 티없고 더없이 전부였던 순간들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그냥 별거 아닌 소소한 것들까지 같아서 귀로 호들갑을 떨고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 평수를 넓혔던 그러한 시간들. 그러한 시간들로 쌓은 탑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당연히 그 탑이 언제나 영원하진 않다. 일련의 과정들에 스며들어 마침내 끝맺음을 고하게 되는 마침표가 어쩌면 필연일 수 있다. 그 결을 반추하여, 여운 한 스푼의 힘을 빌려, 감정에 그리고 진심에 충실했던 순간들을 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