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트별 Jul 04. 2022

숨이 닿고, 갈망의 끝에서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 2021, 박찬욱

나쁜이와 만만이

만만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서로를 위할 뿐이었음이 선명해진다. 처음엔 불분명한 모든 것을 붙들고 첫발을 떼었던 그는 시종일관 안약을 넣어야 하는, 모호함에 휘감긴 사람이다.


의심 한 방울로 시작한 수사는 이내 마음에 번져 퍼지는 호기심에 젖어 무마되고, 자신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속절없이 잠식된다. 그렇게 정체도, 본심도 도통 '알 수 없는' 이로 인해 비로소 명확해지는 존재의 깨달음은 결국 운명의 장르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한번 '재연'되는 사건의 엄습은 그러한 생각의 도달을 굳히기도, 깨기도 하는 양가적 심상을 띤다. 덮었던 진실에 덧대진 진실은 설계자로서의 그녀를 진하게 각인하는 매개가 되어, 그간 그녀가 그렇게 운명을 만들고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개진한다. 결심이 바탕이 된 결혼부터, 밀도를 쌓아가는 짜인 각본 아래 서로가 상호적으로 포위된다.


부서지는 파도의 끝에서 그는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삶의 이유가 명확해졌지만 이내 삶 자체는 명확하지 않게 되었구나. 이제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구나.




해준

직업적으로 고지식할 정도의 굳건한 신념을 가진 해준이 서래에게 서며들어 점점 허물어져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수사를 명분 삼아 온갖 면에서 속속들이 파헤치려 하지만, 증폭되는 호기심과 감정에 못 이겨서, 혹은 못 이기는 척하며 그저 그녀를 관조하는 모양새로 자신을 세운다.


이윽고 '사랑에 빠진' 무방비 상태에 당도하게 된 그는, 덮였던 층계에 올라 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신념의 정립을 거부하고 판을 벗어나는 행보로 그녀와의 관계를 매듭지으려 한다. 허나 다시금 새로운 판을 짜 그 안으로 뛰어들어온 서래의 꼿꼿함에, 고장났던 감정이 요동치는 현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끝까지 자신을 위했던 사실까지 알게 된 마당에, 그는 이제 남은 평생 동안 서래를 영원히 하염없이 사무치게 갖게 되었다.




서래

사건도 감정도 자신의 뜻대로 판을 짜는 서래는 설계자에 가깝다. 손을 굽혀 녹음을 하는 해준은 사용자와 다름없다. 형사와 피의자라는 관계가 차츰 희미해지고, 수사의 방향이 어째 점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만 가는 것 역시 그녀의 조립 실력이 월등하다는 사실에 힘을 보탠다.


허나 신념까지 꺾어가며 감정을 묻는 해준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후로, 서래는 짜인 판 안으로 뛰어들어 거리낌 없이 자신을 사용자화(化) 한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닿고만 싶은, ‘결심’까지 하게 만드는 그의 안에 묻히기 위해서.


그녀 위로 차오르는 건 바닷물이 아니라, 온몸을 덮고도 남는 해준의 사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 올해의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