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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트별 Feb 10. 2022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얼굴들

연수 & 웅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더없이 크나큰 행운이자 행복일지 모른다.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 순간에 정제된 우리를, 언제든 꺼내서 마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행위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값지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전부와 다름없는 인연의 고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소중함을 알면서도 놓아버렸던 건 자신에게 몰아치는 모든 것들 외의 범주에 속하는, 마음을 온전히 담았던 유일한 편이자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연유도 알 수 없이 남겨졌음에도 쉬이 떨치지 못했던 건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습이 있어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게 했던 속삭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잊지 못하고 잊지 않는 우리의 지금에 시간을 담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렇게 모든 순간을 함께 했고 함께 하며 함께 할, 그해 우리는.




지웅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그 당연한 진리가 이따금씩, 아니 어쩌면 꽤 자주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될놈될의 기세가 진하다 못해 무척이나 거세서, 나의 초라함이 유독 커 보임에 따라 자꾸만 스스로를 감추고픈 혹은 감춰야만 하는 수순에 파묻힌다. 남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닌 보통의 평범한 삶이, 나에겐 난도를 벗어난 불가능의 테마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런 척하면서 살아가는 게 일종의 일상처럼 굳어져 그 위를 터벅터벅 표류하고 있을 즈음, 익숙해졌다는 마음가짐을 위안 삼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꿋꿋하게 서있을 수 있는 정도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해부터 품었던 마음이 지금까지 쭈욱 조용히 끓어왔음을 깨달았을 때, 텅 빈 집 안의 공기가 있는 힘껏 온몸을 찔러올 때, 마음에 가부좌를 트는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늘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극복이란 언어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채워줄 따스한 단편들이 있기 때문일 테다. 손을 잡고 걸었던 옛날을 되감아 미소를 올리며 그 작은 추억 조각 하나를 풀어내고, 언제나 곁을 지켜주던 이가 용기를 내어 자아내는 감정의 조각 하나를 담아낸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 마주하는 나를, 이제부터 온전하게 등장시켜 본다.




채란

짝사랑만큼 아린 것도 없다지만, 다른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이를 짝사랑하는 건 또 다른 쓰라림의 문제다. 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왔기에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녀 앞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빚어지는 그의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시려오는 마음의 온도를 마냥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텅 비었지만 무거운 무언가를 계속 들고 서서 바라보는 것 같은 그 고된 일상이 응어리진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를 문밖에서 지켜보는 것도, 마주 앉아 그리 대단치 않은 식사를 같이 하는 것도, 사 온 도시락을 주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것도, 잔뜩 움츠린 채 스스로를 등지는 그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전부 그를 향하여 뚝뚝 흘러넘치는 자신의 진한 마음 표현인데. 조금이라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가 그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나.


오매불망 쌓아온 자신의 마음탑을 용기 내어 건네는, 그 감정의 전달식이 그래서 더 따숩고 애틋하다.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된 그들에게도 소중한, 그해 우리는.




엔제이

귀천은 없는데, 잣대는 많고 무겁다. 저마다의 밥벌이에 고충은 무조건 존재하겠지만, 모두가 알아보는, 이른바 유명인이 가지는 괴로움은 또 다른 색채로 나타난다. 솔직해야 하지만 마냥 솔직하면 안 되고, 그렇다고 솔직하지 않아도 안 되는, 가불기의 틀 안에 고립된 이들의 삶은 무척이나 애달파 보인다.


단 하나의 비수만 꽂혀도 멘탈이 울렁거리는데, 수십수백수천개의 비수를 맞는 일상은 감히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그녀의 이러한 삶을 잠시나마 타개해 주고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그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림에서 사람으로 전이된 온전한 감정은 행복 어린 웃음을 꽃피우게 만들고,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마음을 따스하게 뎁혀준다.


그녀에게도 그해는 많은 것들을 향한 헌사와도 같다. 꼿꼿한 자존심 따위는 살포시 접게 만들 만큼의 금쪽같은 그에게, 아리지만 단단하게 위안이 되었던 그 순간들에게.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솔직하게 나아갈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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