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떠나는 사람도 있고 아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혹은 현실세계가 아닌 공간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수시로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는 현대인들은 다들 그 순간에 잠시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나는 전형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비용이 많이 들고 부담이 되는 여행이나 모험은 싫어해서 주로 게임이나 유튜브로 잠시 떠났다. 현실보다 가상세계에 오래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가상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비용이 적게 들어 부담이 없는듯한 느낌이지만 효율이 좋지 않다. 부담이 없다고 생각해서 너무 자주 떠나게 되고 너무 익숙해서 기분 전환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아내와 함께 멀리 여행도 떠난다. 여행을 갈 때는 귀찮지만 기분전환이 되는 그 기분 때문인지 여행이 끝나가면 다시 현실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피곤한 기분이 드는 여행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혼란을 느낄 때도 있다.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내가 제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이상적인 여행을 발견했다. 가상세계를 떠나는 것만큼이나 비용이 저렴하면서 엄청 멀리 떠나는 것만큼 기분 전환이 된다. 바로 딸인 제이와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무슨 딸과 일상을 보내는 게 여행이냐?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우리 딸이 초능력자인지 굉장한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었다.
여행으로 바뀐 일상에 대해서 소개하면 일단 늘 걷던 산책로가 여행지로 바뀌었다. 늘 걷던 산책로를 제이와 함께 걸으면 마치 처음 오는 여행지의 산책로에 온 것처럼 지형을 자세히 확인하게 된다. 도로가 얼마나 평평한지 계단은 많지 않은지 평소에 나라면 신경도 안 쓰던 낮은 턱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산책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평소에 나에게 한 없이 평범하던 산책로도 제이와 함께 가면 모험이 가득한 오프로드로 바뀐다. 산책로에서 늘 보던 익숙한 신호등, 버스, 나무, 건물들은 제이가 눈을 빛내면서 호기심에 바라보는 순간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을 보는 것처럼 일상의 존재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늘 보던 익숙한 건물에서 놓쳤던 특징을 다시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게 타던 버스가 다른 자동차에 비해 신기하며 겁이 날 정도로 상당히 크다는 생각도 한다. 평범하게 지나쳤던 나무들은 유모차에 누운 제이의 시선으로 보면 다양한 하늘의 모습에 걸려있어서 모습이 늘 새롭고 아름답다. 목표만 생각하면서 빠르게 걷던 길은 아이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걷게 되어 아쉬웠던 산책로가 만족스러운 산책로가 된다. 산책하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던 익숙한 햇빛과 바람도 여행지에 도착한 것처럼 좀 더 세밀하게 느끼면서 걷게 된다.
산책을 하다가 늘 가던 카페에 들어가면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던 전용석에 앉지 않고 제이와 넉넉히 같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자리에 앉게 된다.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단골처럼 이용했던 카페가 낯선 카페에 들어온 여행객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 띄도록 이용한다. 항상 맡아왔던 카페의 커피 향을 다시 맡아보고 카페의 인테리어를 다시 세밀하게 살펴보며 제이에게 문제가 안될지 고민해 본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이 시야에 존재하는 카페 소품을 발견하면 아이처럼 호기심에 보게 된다. 이전에는 카페에 와서 나만을 바라보거나 같이 온 사람에게만 집중했다면 마치 여행객처럼 지금은 다른 낯선 손님들에게도 집중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다른 사람들은 없는지 나의 아이에게 반한 다른 사람들은 없는지 아이를 위협할 위험 요소는 없는지 확인하게 된다. 각자 커피를 마시며 보던 스마트폰은 어느새 주머니로 들어갔고 쉽게 마실 수 있었던 커피는 더 이상 쉽게 마실 수가 없지만 아내와 같이 제이의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 마시는 커피가 더욱 향기롭고 맛있다. 쉽게 마실 때는 평범하고 기억에 남지 않았던 커피가 제이와 함께하면서 유독 더 기억에 강렬히 남는 커피가 된다. 항상 평범하게 쓰던 카페 안의 용품들은 해당 용품을 처음 보는 여행객처럼 신기한 장난감이 된다. 닦는 용도로만 쓰던 냅킨을 만지고 뜯고, 커피를 가져오던 쟁반을 두들겨 보고,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얼음이 남은 컵을 흔들어 본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이 되어 아이가 보챌 시간을 예상해 가면서 앉아 있기도 하고 모든 시간을 다 가진 여행객이 되어 잠자는 아이가 깨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기도 한다. 여행지에 가면 오히려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듯이 제이와 함께 카페에 가면 아내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며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그 외에도 여행처럼 느껴지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특별한 여행을 한 후에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흥겹게 하는 것처럼 틈날 때마다 아이 돌보는 이야기를 흥겹게 나누게 되고, 마치 처음 보는 나라에 온 것처럼 아이와 바디랭귀지를 섞은 새로운 언어로 대화를 한다. 여행지의 짜릿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처럼 아이의 첫 뒤집기, 첫 배밀이 등의 많은 첫 행동들을 짜릿하게 즐기게 되고, 여행지의 낯선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이유식과 아이용 과자를 맛보게 된다. 이외에도 너무 많은 여행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또한 앞으로 제이가 자라면서 더욱더 다양하고 많은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될 예정이라서 마치 여행을 갔는데 기대 안 한 첫 여행지부터 너무 만족스러워서 여행하는 내내 더욱더 기대가 되는 완벽한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이 여행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너무 긴 여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떠나고 나면 다시 올 수 없는 여행이고 떠난 후에는 강하게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우리는 지금 여행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던 아빠에게 생애 최고의 여행을 선물해 준 제이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