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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31. 2019

과도한 사랑과 관심은 독이 됩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는 사람들 17화


칸테가 좋아할 만한 자리를 찾기 위해 아침부터 방안을 뱅글뱅글 돌았어. '말해봐 칸테, 어디가 좋겠어' 하며 방안을 휘적휘적 걸어 다녔는데, 아무래도 칸테는 '다 귀찮으니 그냥 소파 곁에 놔줘' 하며 손을 내젓는 듯해서 나는 하얀 도자기 화분을 질질 끌어 누더기 소파 옆에 꼭 붙여 두었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조금 걸리적거릴 자리에. 괜찮아. 난 이제 혼자니까 뭐라도 나를 좀 귀찮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개나 고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도피 인간이나 다름없으니, 사실 칸테보다 완벽한 존재는 없지. 


칸테 앞에 앉아 다육 식물을 위한 참고서를 뒤적였어. 다육 식물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이라는 게 있어서 모두에게 공통되는 노하우 같은 건 몇 가지 없더라고. 칸테에 해당되는 분량은 다섯 페이지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볕이 세게 들지 않는 자리에 두고, 삼주에서 오주 안팎의 적당한 시기에 물을 줍니다' 같은 애매한 문장들 뿐이었어. 난 이런 게 참 곤란하더라. 4주 라거나, 21일 간격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분명하게 알려주면 좋잖아. ‘뭐뭐 안팎의 적당한 때’ 같은 이야기는 뭐랄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따위를 가르치는 교묘한 장사꾼 같아서 영 신뢰가 가질 않는단 말이야.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다육 식물에게 과도한 사랑과 관심은 독이 됩니다'라는 긴장감 가득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 ‘독’이라는 붉은 글씨 위에는 작은 선인장 캐릭터가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엉엉 울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어찌나 서러워 보이는지 내 얼굴도 덩달아 꾸깃해져 버렸어. 


심지어 다육식물이 그렇다면 메타 역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문득 머리를 스치기까지 했어. 나의 과도한 사랑과 관심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말이야. 더 준 이가 본전도 못 찾고 망하는 이야기는 아주 질리도록 들어왔잖아. 과도한 애정을 받은 모든 생명체는 결국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대의 손아귀에서 도망쳐 버리고야 만다는, 세상만사의 숨겨진 비밀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싶은 거야. 결국 모든 건 내가 메타를 너무 사랑한 탓일지도 모른다며 칸테 앞에서 구질구질 앞뒤도 안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맥이 끊겼어. 


아빠였어. ‘그래, 좀 어떠니. 생활비가 필요할 텐데 말이다. 네가 가진 돈은 보증금이니 뭐니 해서 전부 써버렸잖니’ 하는 말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도 좀 찾아볼까 해요. 시내까지 거리는 좀 있지만, 사람이 적은 동네라 자리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대답했더니 아빠는 ‘그럴 필요 없다’ 하며 단칼에 말을 잘랐어. 

‘독립을 준비하는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보증금도 이 안에서 다 해결했을 텐데, 결국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네 손해다. 네 돈이나 다름없는 돈이 조금 있으니 당분간은 필요한 만큼 보내주마. 글을 쓰든 뭘 하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편히 지내는 편이 좋지 않겠니. 좋은 공기도 듬뿍 마시고. 제일 중요한 건 심신의 안정이니까 말이다’ 내 돈이나 다름없는 돈이라니, 심신의 안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 하고 물으니 '돈 보내준다는 말이지 무슨 말이냐. 나 출근한다' 하고는 전화가 뚝 끊어졌어. 

황망한 표정으로 칸테를 바라보니, 칸테 역시 난들 알겠느냐는 표정으로 멀뚱히 눈을 껌뻑였어. 




글. 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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