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빛을 지켜온 말도 등대, 이제는 사람과 시간
전북 군산 고군산군도 말도의 끝자락에 선 등대는, 1909년 첫 불을 밝힌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 없다. 1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서해의 파도는 수없이 출렁였고 항로를 지나는 배들은 등대의 침묵 속에 길을 물었으며, 그 빛은 늘 흔들림 없이 어둠을 뚫고 항해자의 눈에 닿았다. 말도 등대는 단지 바다를 비춘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사람의 마음을, 존재의 이유를 함께 비추어온 ‘시간의 지킴이’였다.
이제 이 오래된 구조물은 해양수산부의 ‘등대 해양 문화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도서 지역 최초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전망대와 해양문화관, 그리고 고요한 트레킹 코스가 마련되어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인간의 사유와 정서가 머무는 철학적 장소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누구도 말하지 않은 채 말해왔던 등대가, 이제 누군가와 함께 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등대는 단순한 기능적 상징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에 홀로 서 있되 모두와 연결되고, 침묵 속에 있으되 가장 강하게 말하는 존재이다. 등대는 늘 고독 속에서 빛을 낸다. 그것은 흔들리는 세상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이며, 바다처럼 넓은 인생에서 자신이 어디쯤 왔는지를 묻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하나의 대답이다.
“바람이 부는 날, 등대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빛은 바다를 꿰뚫고 길 잃은 마음에 작은 불씨를 심는다.” 이 한 구절 속에 등대가 가진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 존재의 무게, 고요함의 힘, 그리고 그 빛이 닿은 이들이 품은 희망까지.
말도 등대는 이제 구조물이 아니라, 풍경이 되고 철학이 되고, 우리가 잃어버린 방향을 되찾게 해주는 마음의 공간이 된다. CNN이 ‘아시아의 숨겨진 명소’로 선정한 고군산군도의 풍광 속에서, 이 등대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가장 뚜렷한 흔적으로 자리한다. 자연과 사람, 예술과 시간, 철학과 감성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방문객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항해하는 탐험가가 된다.
말도 등대는 그들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