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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Sep 12. 2022

고시식당, 그 낭만과 아픔의 볼레로

동그란 한식뷔페 그릇에 담긴 땀과 눈물

 고시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신림동 고시촌에선 두 번 살았다. 한 번은 일 때문에, 또 한 번은 정식으로 집을 구하기 전 임시 거주의 개념으로 머물렀다.     



 신림동 고시촌은 원룸·월세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지방에서 상경한 1인 가구 수험생이 많아서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공부만 할 수 있게끔 각종 편의 시설도 많다. 특히 잘 되어 있는 건 ‘고시식당’이다. 한식뷔페 형식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수험생 상당수가 고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10장 이상 식권을 구매하거나 월식을 할 경우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임시 거주 형식으로 고시촌에 살던 시절, 나도 고시식당을 자주 이용했었다. 저렴했고 반찬도 잘 나오는 편이었다. 명절엔 반찬이 더 좋았다. 육원전이나 잡채 같은 잔치 음식도 나왔고, 갈비찜이나 숙회가 차려지기도 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고시식당 외에도 분식, 한식, 중식, 경양식 등 여러 종류의 식당이 있다. 처음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음식이 잘 나오는데 왜 다른 종류의 식당이 이렇게 많을까.’     


 좀 지나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시식당에서 계속 먹다 보니 물렸다. 여러 고시식당을 돌아다니며 다채로움을 꾀해 봤지만, ‘짬밥의 한계’ 같은 뭐 그런 아쉬움이 있었다. ‘고시음식’이 지겨울 때면 나도 분식집에서 쫄면도 때리고 중국집에서 울면도 울렸다.       


 신림동 고시촌은 대한민국에서 맨주먹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에게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주는 곳이기도 하다. 합격으로 환호하는 학생과 낙방으로 좌절하는 학생의 기운이 묘하게 엉키며 늘 긴장과 활력이 넘쳐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활기가 약해진 분위기다. 결정적인 계기는 사법시험 폐지다. 이후 인터넷 강의가 활성화되고 자체적으로 고시반을 운영하는 대학도 늘어나면서 유입인구가 줄어들었다.     


 얼마 전, 나는 신림동 고시촌에 다시 가보았다. 관악구 난곡동에서 볼 일을 본 후 고시촌에 올라가 본 것이다. 학생들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지역 전반적으로 활력 넘치던 예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폐업한 고시식당도 몇 개 보였다. 내가 자주 가던 고시식당은 대학동 주민센터 인근 대로변에 있었는데, 가보니 상호가 바뀌어 있었다.


 아쉬움을 삼키며 주민센터 옆길로 들어섰다. 조금 걷다 보니 또 다른 고시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도 예전에 가끔 이용하던 곳이다.     


 ‘다행이다. 아직 운영 중이어서.’     


 입장 후 식권을 끊었다. 앗, 가격이 많이 올랐다. 그래도 타 지역 한식뷔페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오후 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어서 이용객은 별로 없었다.      


 나는 동그란 뷔페 그릇에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배식대 끝에선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손수 된장국을 뜨고 있었다. 국을 받으며 아저씨께 물어보았다. 요즘 경기는 어떠냐고, 학생은 얼마나 줄었냐고. 아저씨는 ‘코로나 때문에 장사 접을 뻔했다’고 넋두리를 한 뒤 ‘그래도 요즘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자격증반 학생과 공무원 수험생이 있기에 그렇단다. 하긴 내가 고시촌에 살 때도 공무원 수험생(행정고시, 경찰시험 포함)이 많긴 했었다.      



 나는 아저씨로부터 받은 된장국을 들고 자리로 이동했다. 건너편에선 한 여자 수험생이 영어 단어장을 훑어보며 후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금 고시촌에서 살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수험생들이 공무원 수험서를 옆에 끼고 시간을 쪼개어 가며 밥을 먹곤 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부러운 마음이 가장 컸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노력하는 그들의 열정과 젊음이 부러웠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거다. 그래도 목표를 위해 많은 걸 절제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 경험은 후에 큰 자산이 될 거다.      


 혹자는 말한다. 세상은 첨단으로 변해 가는데 젊은이들이 안정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게 한심해 보인다고 말이다. 도전 정신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말에 동의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섣불리 비판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준비생도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인데 대충 결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수험생의 길을 택한 것도 엄연한 ‘도전’이다.      


 웃기는 건 도전정신 운운하는 사람도 막상 자기 자식 배필감, 자기 여동생 신랑감으로는 벤처기업가보다 공무원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내 주위에도 그런 꼰대 여럿 있다. 공무원 수험생을 비판하려거든 그런 이율배반부터 걷어내고 비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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