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igar Smoker In Seoul

연기 자욱한 Cigar 세계로의 초대

by Hanwool

저는 지금 역삼동에 있는 조용한 시가바에서 굵고 짙은 초콜릿색 쿠바시가를 태우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5년 전 이태원에 저의 음악/그림작업실 근처에 있던 작은 시가바를 호기심에 방문한 이후, 시가와 파이프 등 인공첨가물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담뱃잎 향과 맛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시가는 유명한 쿠바산 시가, 몬테크리스토 No.2였죠.


하얀 연초조차 태우지 않는 제가 첫 시가의 향을 충분히 음미하고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어릴 적 한겨울의 시골에서 낙엽과 나뭇가지를 태우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게 놀던 불냄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말 그대로 낙엽이 타는 그 불장난의 냄새를 다시 맡게 되자 시공간이 뒤섞이는 듯 묘한 멀미마저 느끼며 시가의 매력에 성큼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시가 입문자들에게 '시가를 태운다는 것은 그저 서울 한 복판에서 하는 합법적 불장난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시가입문 초창기 구매했던 시가들


그 이후로 참새가 방앗간을 종종이며 드나들듯 이태원의 시가샵을 방문해서 시가를 잔뜩 구매한 뒤, 음악작업실에서 창문을 열고 비가 오는, 때로는 눈이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시가를 태우기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 깊게 즐기고 있던 위스키와 시가의 페어링에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주위 사람들에게 위스키를 나누고 전파하며 위스키 탐험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시가라는 새로운 지평선을 발견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두 취미를 섞어가는 과정은 매우 즐거웠고 시가를 태우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위스키와 시가의 페어링




저는 인생을 살면서 꽤 여러 종류의 취미를 향유해 왔습니다.

평생의 제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음악이지만, 20대 때 차(tea), 30대 때 오페라와 DJing 그리고 위스키, 마지막(?)으로 시가라는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늘 그랬듯 꽂힌 대상에 관한 국내, 해외 서적을 탐독하며 입력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실제 나의 경험과 연결 짓는 몰두(혹은 연구)를 하던 중, 유독 이 Cigar에 관해서만은 우리나라에 출판 혹은 번역된 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마존에서 10여 권의 원서책을 주문해 읽으면서 문득 '내가 한국에서 처음 출판되는 시가책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되었죠.

아마존에서 구매한 시가책들 중 일부



시가의 종류와 기원, 브랜드별 특징과 대표 시가들을 사전식으로 나열하는 두꺼운 책들부터 시가와 헤밍웨이, 그리고 쿠바라는 나라에 대한 서사를 펼치는 책, 시가 애호가들을 위한 시가 매거진까지 다양한 원서를 읽어가면서 나는 어떤 식으로 이 특별한 취미와 문화를, 면대면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종이나 ebook으로 만나게 될 이들에게 전달하면 좋을지 하루하루 고민하고 구상하던 중, 한 지인에게 브런치라는 채널에 글을 연재해 보고 나중에 그것을 책으로 엮어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게 되고 이렇게 작가소개글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가란 저에게 시간을 태우는 행위(물론 꽤 많은 양의 돈도 탑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남동의 전망 좋은 야외테라스에서 좋아하는 위스키와 큐반시가를 페어링 하며 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속세의 고민들과 걱정들이 한 줌 모래알처럼 눈앞에서 흩어지는듯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나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가를 소개하며 함께 태울 때면 어린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듯, 혹은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해 나가듯, 따로 또 같이 시가를 즐기는 그 시간 자체가 특별해지기도 합니다. 시가 애호가들끼리 모여서 태울 때는 시가를 피며 시가책을 하나씩 각자 무릎에 펼쳐놓은 채로 시가얘기를 몇 시간씩 나누는 즐거움도 있고요. 물론 어쩔 땐 니코틴펀치라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컨디션과 풍미가 훌륭한 시가를 태울 땐 그 특별한 맛에 흠뻑 빠져 지나치게 열심히 태우다가 그만 니코틴펀치를 맞기도 하죠.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에 고생하며 다시는 시가를 태우지 않겠다 짧은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결심은 이틀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4년간 다양한 시가를 경험해 오며 힘든 날도, 즐거운 날도, 지극히 평범한 날도 함께해 온 시가는 이제, 제 일상에 원래 있었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매일 시가를 태우는 나만의 공간들

눈을 뜨면 그날의 무드에 맞는 시가 한 스틱과 와인 30ml, 혹은 위스키 15ml, 그리고 라테 한잔을 내려서 밖으로 나갑니다. 캠핑의자에 앉아 햇빛과 바람을 느끼고 시가를 여유롭게 태우며 업무구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모닝 루틴이 된 지는 꽤 오래입니다.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시가 애호가들과 시가바에 삼삼오오 모여 평소에 눈여겨두었던 특별한 시가를 큰맘 먹고 태웁니다. 또한 한국의 시가시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좁기에 해외직구(주로 스위스에서 구입하고 있습니다.)로 눈을 돌리기도 하고, 외국여행을 나갈 때면 랜드마크는 관심이 없지만 반드시 들르는 곳들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시가바들이며 그곳에서 한국에선 접하기 어려운 희귀한 시가들을 찾아 태워봅니다.

뉴욕, 홍콩, 대만의 시가바 투어를 통해 느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외국 흡연문화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흡연문화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도 매너 있게 시가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이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태웠던 퀘돌세 끌라로

글 시작 무렵 진득하게 맛깔스러운 자태를 뽐내던 Quai D'orsay No.54 시가가 이제 어느덧 손가락 두 마디 정도만 남긴 채 마지막 풍미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오늘 태운 시가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초콜릿향과 우디, 크리미 한 연무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완벽했던 시가였네요.

(이 시가는 '오르세의 거리'라는 이름처럼 프랑스인들의 취향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시가로 부드럽고 달큼한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가 글을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시가 브랜드 하나하나를 소개하며 그에 얽힌 역사와 비화들,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가 종류들과 해외샵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 등 시가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양한 작은 가지들로 연결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시가의 매력을 구석구석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홍콩에서 온 지인이 선물해 준 한정판 파르타가스 시가

홍콩, 대만에서 보았던 대를 이어 전승되는 시가문화들과 어느 골목을 가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가바, 많은 사람들이 약속 없이 모이고 만나서 웃고 떠들고 즐기는 사교의 장으로서의 시가라운지 등은 상대적으로 음성적인 우리나라 시가문화와 대비되는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저의 글을 통해, 단순한 흡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오묘한 시가의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