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가의 매력에 빠지다

넌큐반을 중심으로

by Hanwool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시가와의 첫 만남


첫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태원에 작은 음악/그림 작업실이 있었다.


어느 날 이태원을 산책하다가 작은 골목에서 라누베(더바코 3호점)라는 시가바 겸 시가샵을 발견하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진짜 시가를 처음 구경하게 되었다(사실 중학생 때 설악산 수학여행을 가서 기념품샵에서 샀던 조악했던 시가가 내가 처음 본 시가이긴 했다. 엄청 쓰고 맛이 없었던 기억이지만 시가란 것이 나에게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긴 했던 모양이다).



내가 처음 샀던 시가는 몬테크리스토 no.2와 넌큐반 시가 로키 파텔 주니어, 아트로 푸엔테 헤밍웨이 숏스토리, 그리고 다양한 롤링타바코들이었다.


롤링 타바코는 수년 전 한 선배가 담배를 직접 말아 피우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경험해 보고 마치 믹스커피를 마시다가 향기로운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셔본 듯한 충격을 받았었기에 구입해 보았고, 몬테크리스토는 익숙한 이름에, 로키 파텔 주니어는 입문자에 적합하다는 직원의 추천, 그리고 아트로 푸엔테 헤밍웨이 숏스토리는 그 이름에서 자극받은 상상력에 의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시가에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이라니. 대체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는 걸까? 게다가 초콜릿 스틱처럼 먹음직스럽게(?) 생긴 그 자태와 금빛 밴드라니.



첫 시가인 몬테크리스토를 작업실에서 성스럽게 커터로 자른 후 불을 붙여보았고 어릴 적 불장난하던 낙엽 타는 냄새를 맡으며 상상력은 더욱 극대화되어 갔다. 한 모금, 두 모금... 흙냄새와 오래된 낙엽냄새. 음... 바닐라도 약간...좋은 것 같긴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는데...? 조금 더 태워보자... 나의 시가 첫 경험은 니코틴 펀치를 맞기 바로직전에 끝났다.

한 스틱을 다 태우지도 못하고 몽롱하고 어지러운 기분에 시가를 내려놓았다(시가는 속담이 아닌 겉담, 입담을 하며 향을 즐기는 행위이지만 니코틴 함유량이 일반 담배의 20배에 달하고 구강으로 흡수되는 니코틴 양도 상당하다). 생긴 것과 다르게 초콜릿 맛이 나지도 않았고 입에서는 텁텁한 탄맛이 났으며 약간 속이 울렁거리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일단 시가를 태우고 있다는 그 행위가 너무나 멋졌다.

굵은 갈색의 스틱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수년간 숙성된 낙엽의 탄내를 맡는 것은 마치 선사시대 인류가 불을 신성시하고 의존해 생존했듯 그 불냄새만으로도 위안과 안정을 얻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연에서 유래한 양질(?)의 니코틴.

나는 카페인은 좋아했지만 니코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체내 니코틴 농도가 제로에서 급격히 상승한 탓에 심박수가 빨라졌고 위장의 연동운동이 활발해졌다(실제로 시가를 태우면 소화운동을 촉진시켜 빠르게 허기가 진다).

시가로 인한 몸의 변화가 생소했지만 구름 위에 붕 뜬 듯한 그 기분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그날의 시가 경험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 묘한 기분을 잊지 못하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조금씩 조금씩 다양한 시가맛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샴페인 이라는 이름과 화려한 밴드에 끌려 구입했던 페르도모 10주년 샴페인 니카라과 시가. 맛은 매웠다.


퓨리토스, 혹은 시가릴로 라고 불리는 작은 사이즈의 시가들을 집중탐구해 봤다.

'니카라과'라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많았고 형형색색의 시가 케이스 색상과 디자인만큼 다른 맛과 향이 났다. 입문자였기에 얼씨, 에스프레소, 너티, 플로럴 등 표현할 단어를 생각해 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맛이 다르고 내 입맛에 뭐가 더 좋은지를 찾아낼 수는 있었다.

파란 밴드 - 로키파텔의 카메룬 래퍼 2003 빈티지 - 였다. 일단 이 시가는 단맛과 코코아의 텁텁한 맛이 났다. 커피 향도 살짝? 다음 스틱도 비슷한 맛이 날까? 한 틴안에 들어있는 다섯 스틱의 시가가 며칠 만에 동이 났다.


아트로 푸엔테 헤밍웨이 숏스토리. 지금보니 시가의 상태가 건조하고 좋지 않다.

작은 시가들로 시가맛을 익힌 후 아껴두었던 헤밍웨이 숏스토리를 드디어 작업실에서 태웠다.

신선한 건초향과 빵 굽는 냄새가 살짝 났다. 삼삼하게 삼나무향도 느껴진다.

숏스토리라는 이름처럼 짧은 시간 동안 밀도 있게 태우는 시가였다.


한동안 매력에 푹 빠졌던 올리바 멜라니오. 향신료 향이 느껴지는 맥캘란 18yo와 주로 페어링 했다.

이번엔 상수동에 있는 파스타바코라는 시가샵을 들렀다.

파이프 종류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있어 파이프도 바로 입문해 버렸다. 추가로 아트로 푸엔테 헤밍웨이 숏스토리와 올리바 멜라니오라는 이름의 시가를 집어 들었다. 아마도 맛깔스럽게 생긴 초콜릿색 밴드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대를 안고 그날 저녁 올리바 멜라니오 한스틱과 시가커터, 맥캘란 18년을 한잔 따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박스프레스드 시가(동그랗지 않고 네모 납작하게 눌려있는 시가형태)라 입에 물기 좋았다. 불을 붙이자 그 전의 시가들과 다르게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가 진동을 했다. 이번엔 진짜 초콜릿향도 났다. 얼씨, 우디가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두 모금, 세 모금...

드디어 박스 떼기를 할 만큼 맛난 시가를 발견했다.





나의 첫 시가 박스 떼기



올리바라는 시가 브랜드는 니카라과에서 시가를 만들고 있는 회사로 1886년 쿠바에서 시가를 생산하다가 1959년 쿠바 혁명으로 1964년에 스페인을 거쳐 니카라과로 이민을 가서 시가를 제조하고 있다. 올리바는 넌큐반 시가 중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로, 멜라니오라는 이 시가는 올라바의 V라인 중 5년 숙성잎으로 말은 시가이다. 여러 비톨라(시가의 모양과 사이즈를 말한다.)로 발매되고 있다.

- 세리에 V 멜라니오는 전문적으로 발효된 리게로 필러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말리며, 이 잎은 강하고 풍부한 맛으로 유명합니다. 이 특별한 시가는 프리미엄 시가 흡연자의 최고 기대를 뛰어넘는 제품입니다. 신중하게 숙성된 할라파 블렌드는 특히 풍미가 뛰어난 연기를 만들어냅니다. 96점을 받았으며 2014년 올해의 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 출처 : 올리바 홈페이지
사진출처 : 올리바 홈페이지


나의 첫 박스떼기 시가. 올리바 V 멜라니오.

위스키계에는 박스 떼기라는 말이 있다.

너무 좋아하는 바틀이거나 희귀한 위스키를 만난 경우, 혹은 특가로 나온 경우, 한 박스(보통 6병 들이)를 통째로 구입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다. 나도 좋아하는 위스키를 한 번에 3~4병씩 구매한 적은 있지만 아직 박스 떼기를 해본 적은 없다.

시가는 저렴한 넌큐반은 한스틱에 1~2만 원대부터, 좋은 것이나 큐반시가는 3~4만 원대부터 시작했'었'다. (내가 입문했던 5년 전 당시만 해도 큐반시가 가격이 지금처럼 천정부지로 치솟지는 않았었다. 큐반시가의 가격은 코로나 시기 쿠바내수시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제 2배 이상 뛰었다.) 게다가 시가는 위스키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훨씬 짧다. 위스키를 수년간 즐기며 즐거운 취미에 돈이 꽤 많이 든다는 것을 이미 받아들였음에도 시가를 즐기고 소비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었다. 매번 시가샵을 가서 올리바 멜라니오를 두세 개씩 가져오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가끔 시가샵에 멜라니오의 재고가 다 떨어져서 헛걸음을 한 경우 엄청난 위기감이 들었다(한남동에서 상수는 너무 멀었다). 이에 내 생에 첫 시가 박스 떼기를 감행했고 곳간이 가득 찬 농부의 마음처럼 여유롭고 풍요로워졌다.







큐반시가와의 재회



주로 시가를 태우던 이태원 작업실

올리바 멜라니오를 세 박스째 태우고 나자 이제 슬슬 다른 시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위스키도 하나 꽂히면 네 병 정도 음미하고 나서야 다른 위스키 탐험을 다시 시작하곤 했다(물론 네 병을 하루에 마신건 아니다).


시가계의 꽃이 큐반이라는데... 첫 큐반이었던 몬테크리스토는 니코틴 펀치를 살짝 보여주고 사라졌고(반쯤 태우다 잘라서 다음날 태웠는데 흙맛이었다), 그다음 큐반시가는 무엇을 태워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던 중 큐반시가 칸에서 이쁜 쉐잎의 시가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로 볼리바르 벨리코소였다.


사진출처 : TCHcigars.com
쿠바에서 가장 일관되게 풀바디 연기를 생산하는 유일한 제품인 볼리바르 벨리코소 피노는 쿠바의 강력한 스모킹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기 있는 제품입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남미 대부분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주도한 사이먼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그를 미국의 남반구의 조지 워싱턴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 브랜드는 1902년에 설립되었으며 밴드와 박스 모두에 대담하고 눈에 띄는 남성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벨리코소 피노는 볼리바르 라인에서 유일한 피구라도로, 브랜드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스모킹으로 기록된 이유입니다. 상당히 두꺼운 링 게이지(시가의 굵기를 말한다.)는 풍부한 연기를 제공하는 반면, 테이퍼드 헤드는 입안에 도달하기 전 얼씨한 연기, 미네랄, 생 코코아, 커피 원두 등을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합니다.
- 출처 : Cigaraficionado.com
사진출처 : Cigaraficionado.com
두번째 큐반이었던 볼리바르 벨리코소스 피노스

올리바는 태울만큼 태웠다고 생각하며 볼리바르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는데... 너무나 마일드했다. 아니, 마일드하다 못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사실 위의 볼리바르 소개글에도 있다시피 볼리바르는 큐반 중에서도 풀바디의 강한 시가에 속한다). 이럴 수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시가계의 꽃이라고 했는데 큐반시가가 이런 맹맛이라니. 몇 번 스모킹 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피울 이유가 없었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맛있게 태웠던 아트로 푸엔테에 바로 불을 붙였다. 그제야 위안이 되는 맛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위스키에 처음 입문했을 때 나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조니워커 블랙라벨 200ml를 이마트에서 무지성 구매해서 마셨는데 놀랍도록 맛이 좋았다(나는 평생 소주 1병도 다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에 바로 유명한 조니워커 블루라벨로 레벨 업해서 음미해 보았는데 맹숭맹숭하니 특징을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뭔가 좋은 건 알겠는데... 정확히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 블루라벨을 두어 잔 마신 이후 나는 바로 싱글몰트의 세계로 딥다이브했고 몇 년간 오만 싱글몰트를 다 돌고 돌아 어느 날 다시 블루라벨의 맛을 보게 되었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훌륭한 블렌디드 위스키란 바로 싱글몰트의 좋은 점들을 모두 모아놓은, 맛의 복합체가 아닌가.


이제 와서 볼라바르 벨리코소에 실망했던 그 입맛을 돌이켜보자면 위의 경험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자극적인 맛은 느끼기 쉽지만 섬세하고 복합미가 있는 맛은 쉽게 캐치해 내기 어렵다. 훗날 큐반시가에 푹 빠지고 난 후 볼리바르를 다시 태우게 되었을 때 그 강렬함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그토록 맹한 맛이었던 볼리바르가 이렇게나 강력한 큐반시가였다니.


여하튼 그 당시에는 두 번째 큐반시가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넌큐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로키파텔 디케이드, 코네티컷, 넙
올리바 V 벨리코소 : 훌륭한 시가이다
또다른 매력의 시가 릴로의 세계
그와중에 큐반에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코히바를 또 하나 사보았다.
가성비가 훌륭한 올리바 릴로







<시가 미니 상식>


이미지 출처 : www.holts.com


래퍼 : 시가를 감싸는 시가의 겉잎이다. 시가의 밴드와 모양 외에도 시가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래퍼다. 이 때문에 시가 제조업체는 래퍼 선택에 매우 까다롭다. 겉잎은 깔끔하고 매끄럽고 매력적이어야 하고 시가잎줄기의 맥이 두껍거나 색상이 고르지 않는 등 외관상 결점이 있는 시가 잎은 래퍼로 적합하지 않다. 시가 래퍼는 색상, 두께, 질감에 따라 다르며 시가 맛의 최대 60% 이상을 결정할 수 있다. 래퍼는 보통 내추럴(색이 밝은)과 마두로(색이 어두운)로 분류하지만, 마두로의 색이 어두운것은 단순히 시가잎의 색이 어두운것 뿐만 아니라 처리되는 방식과 더 관련이 있다. 마두로는 색이 어둡고 달콤한 맛, 내추럴 품종은 크리미하고 견과류 맛이 난다.


바인더 : 래퍼 잎 바로 아래에는 바인더 레이어가 있다. 이것은 필러(시가 속 층)를 단단하게 감싸는 시가의 형태를 단단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시가를 피울때 구조감있고 부드러운 흡연의 도관(導管)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시가들은 싱글바인더 잎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더블바인더로 이루어진 시가도 있다. 펀치 빈티지 시가는 코네티컷 브로드리프 바인더 한 쌍을 이용해서 만들며 달콤하고 얼씨한 맛을 구현한다.



필러 : 바인더 속을 채우고 있으며 시가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필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가잎들은 래퍼의 풍미를 향상시키고 시가브랜드 고유의 블렌딩, 시가 잎이 자란 땅의 떼루아, 시가 잎을 수확한 해의 특징, 그리고 지역별 특색을 마음껏 펼치는 장이다. 시가 장인들은 시가 필러의 구성으로 뚜렷한 맛의 변화를 표현하여 시가를 태우는 과정에 복합미를 추구하기도 하고 또는 맛의 일관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시가 필러의 밀집도를 조절해 드로우의 밀도(얼마나 뻑뻑한지 부드러운지)와 시가의 타는 속도, 흡입시 강도 등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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