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큐반의 세계를 마주치다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만난 큐반시가 (Hoyo De Monterrey)

by Hanwool


볼리바르의 충격으로 한동안은 큐반을 쳐다보지 않고 넌큐반의 세계를 마음껏 탐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상수역의 파스타바코와 이태원의 더바코에는 넌큐반이 많았다. 꽂힌 브랜드가 올리바였으니 올리바를 집중탐구하면서 다른 넌큐반으로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입문자에게 임팩트 있는 넌큐반 시가들


일단 올리바 O라는 시가릴로가 가성비가 아주 괜찮았다. 성인 손가락 사이즈의 시가릴로였는데 올라바의 특유의 노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격도, 태우는 시간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1틴 5 스틱에 3만 원대, 1 스틱을 태우는데 20~30분이 걸린다). 작은 사이즈지만 풀바디의 향을 느낄 수 있으며 얼씨(흙향), 갈색으로 그을린 빵냄새, 너츠 등을 느낄 수 있다. 올리바 O 릴로는 훗날 큐반을 많이 태우게 된 이후로도 종종 찾게 되는 훌륭한 시가이다.

올리바 세리에 O 시가릴로

Strength : Full

Wrapper : Nicaraguan Habano

Filler : Nicaraguan

Binder : Nicaraguan



두 번째로 역시 벨리코소(탄알모양의 시가 ; 벨리코소는 스페인어로 '호전적'이라는 뜻이다)였다. 올리바 V 벨리코소는 그 탐스러운 초콜릿색 색깔과 반질반질한 윤기에 절로 손이 갔다. 그리고 애쉬가 어찌나 탄탄하고 아름다운지 어쩌면 그 재를 보는 맛에 태우는가 싶기도 했다. 당시 적어둔 짧은 시연기를 보면 '금요일 저녁에는 이걸 찾게 된다. 너무 맛있다.'라고 적혀있다. 금요일 저녁에 태우는 시가였다면 분명 마일드한 녀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의 고단함을 녹여줄 만큼의 강력한 풍미와 위안이 있었다. 다크 초콜릿, 우디, 얼씨(earthy), 가죽, 너티 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시가였지만 아무래도 주중에 태우기에는 조금 강했다.


세리에 V의 저렴한 가격대와 훌륭한 풍미는 주목할만하다. 니카라과 할라파 밸리의 강력한 리제로 타바코와 달콤한 당밀 터치가 균형을 이루면서도 흙, 가죽, 향신료가 풍부한 래퍼를 중심으로 맛을 완성한다. - 출처 : Cigaraficionado.com

세리에 V는 니카라과산 롱 필러의 복합 블렌드다. 특별히 발효된 할라파 밸리 리게로와 블렌딩 되어 고급스러운 Sun Grown 래퍼로 마무리되었다. 이 풍미 가득한 블렌드는 풍부한 커피와 다크 초콜릿 톤의 복합적 풍미를 선보이며 전반적으로 은은하고 균형 잡힌 향신료향이 느껴진다.
- 출처 : 올리바 홈페이지
금요일 밤마다 태웠던 올리바 V 벨리코소. 뾰족한 헤드 형태로 연기가 더 밀도있게 들어오고 입에 물기 용이하다.


처칠, 란세로, 피구라도, 더블토로, 로부스토 등은 시가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여느 날과 같이 상수역 파스타바코에 올리바 V 멜라니오를 박스 떼기 하러 갔는데 멜라니오는 다 팔리고 멜라니오 마두로(Maduro)만 한 박스 남아있다고 해서 박스채 구매해 봤다(처음엔 부담스럽던 시가 박스 떼기가 이제 아무렇지 않아 졌는데 이것은 아직 넌큐반의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마두로란 일반적으로 더 숙성된 시가잎으로 겉을 말은 짙은 색깔의 래퍼를 가진 시가를 말한다. 첫 마두로 경험이었다. 다크 초콜릿 같은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기대를 하며 또 성스럽게 불을 붙였다. 며칠을 땅속에서 숙성된 습을 머금은 낙엽에 불을 붙인 듯 진한 향이 작업실을 채웠다. 한 모금, 두 모금 맛을 보니 터프하고 선명한, 다크 초콜릿으로 기대했던 그 진한 맛이었다. 하지만 섬세함은 조금 모자란 듯했다. 일반 멜라니오가 고소하고 은근한, 섬세한 올리바의 맛을 보여주었다면 마두로는 우디, 초코, 가죽 등의 향이 더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마두로(Maduro) : 마두로는 '숙성하다', '익다'는 뜻의 스페인어로 마두로 래퍼를 사용한 많은 시가들이 조금 더 풀바디이지만 모든 마두로 래퍼의 시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마두로 래퍼의 시가는 풍부한 풍미의 시가 맛을 만들어낸다. 많은 시가입문자들은 마두로 시가가 항상 강하고 지나치게 매운맛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특히 프리미엄 시가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못된 통념 중 하나다. 오늘날 수많은 마두로 시가가 판매되고 있지만 약 40년 전에는 마두로 시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비자 취향이 복잡해지고 더욱 풍부한 풍미를 찾는 경향에 따라 시가시장이 진화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 소비자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담배를 가공하고 발효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마두로 래퍼는 다양한 종자 품종에서 유래했으며 특정 지역이나 시가잎 품종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마카누도 카페, 애쉬튼, 바카라와 같은 브랜드의 마두로들 중 일부 크리미하고 부드럽다. 코히바, 라 글로리아 쿠바나, 카마초, 라 플로르 도미나 등 최고의 풀 바디 마두로 시가들은 풍미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섬세한 발효 과정으로 인해 더 달콤하고 풍미와 강도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카사 드 몬테크리스토에서는 다양한 강도와 풍미 프로필의 전체 스펙트럼을 커버하는 모든 가격대의 핸드 롤 마두로 시가를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올라바 V 멜라니오 마두로 로부스토 : 이전에 구매하던 일반 올라바 V 멜라니오보다 색이 훨씬 진하다.



그다음으로 시가 입문자였던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넌큐반 시가는 돈 페핀 가르시아의 '마이 파더'라는 정감 있는 이름의 시가다. 풍성한 수염에 흰 수염이 조금씩 섞여있는 아버지가 휴일에 입에 물고 계시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2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대와 파란색 천으로 된 밴드, 맛깔스럽게 진한 색의 래퍼에 집어 들었던 시가인데 기대이상으로 맛도 훌륭했다. 에스프레소, 삼나무, 향신료 향 등이 느껴졌고 저렴한 가격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미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에 마이 파더 블루라벨은 파스타바코를 들를 때마다 한 움큼씩 쥐고 나오는 시가 중 한 종류가 되었다(박스 떼기를 하지는 않았다).



돈 페핀 가르시아의 블루 라벨 시리즈


쿠바 태생의 시가 대가 호세 페핀 가르시아™가 만든 초기 블렌드 중 하나인 돈 페핀 가르시아 블루 시가는 니카라과에서 온 최고의 수제 프리미엄 시가 중 하나이다. 2003년 블루라벨이 처음 소개된 이후 수년 동안 이 세계적인 수준의 부티크 브랜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고려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니카라과 푸로스의 능숙하게 말린 이 라인은 에스텔리의 명문 가르시아 가문 농장에서 발견되는 비옥한 화산 토양에서 자란 최고의 쿠바산 씨앗 담배만을 사용한다. 더욱 광범위한 숙성 끝에 모든 블루라벨 시가는 기름으로 반짝이는 놀라운 짙은 갈색 코로호 마두로 포장지로 매끄럽게 덮여 있다. 이 모든 노력과 헌신은 풍부하고 정제된 맛의 삼나무, 나무, 화이트 페퍼, 에스프레소 및 브랜드 시그니처 향신료로 가득한 연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넌큐반의 세계를 탐험하며 서울에 있는 시가샵도 하나씩 알아가던 중, 큐반시가를 주로 취급하는 곳을 알게되었다.


아직 큐반시가의 맛을 모르긴 했지만 큐반시가란 언젠가 정복, 섭렵해야 하는 큰 필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곳을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큐반시가와 마주치다


간판이 없어 입구를 찾아 한참 헤매다 들어간 시가바는 어둡고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시가를 진열해 놓은 워크인 휴미더에도 큐반시가만이 진열되어 있었고 넌큐반이 없었던 탓인지 다른 시가샵보다 시가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원래 태우던 시가들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 시가종류를 훑어보니 확실히 넌큐반보다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었고 그 화려한(하지만 하나도 모르겠던) 라인업 중에 짧고 뚱뚱한,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29,000짜리 시가를 하나 골랐다. 바로 호요 디 몬테레이 쁘띠 로부스토였다(지금은 그때의 두 배의 가격이다).

큐반시가의 매력에 빠지게 만든 호요 쁘띠 로부스토(작은 로부스토 사이즈라는 뜻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야외테라스에서 천천히 V컷으로 시가헤드를 잘라 불을 붙이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충격이었다.

시가에서 나는 꽃향기와 고소한 빵 굽는 냄새란게 무엇인지 이해되자마자 부드러운 크림, 짭짤한 바다소금, 풍미 좋은 바닐라 등이 한 번에 휘몰아쳤다. 시가가 짭짤하다니. 백후추와 호두 등의 견과류 맛도 나타났다 사라졌다(이렇게 풍미를 섬세하게 적을 수 있는 이유는 훗날 이 시가 역시 박스 떼기를 했기 때문이다). 웃음이 났다.

야경을 바라보며 끝내주는 시가를 태우자니 마치 외국의 한적한 시가바에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휴가 가고 비어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환상적인 시가를 태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 시가는 너무 짧았다.


지금의 나라면 망설임 없이 한 스틱을 더 집어 들고 그 맛을 탐미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시가를 연속해서 두대 이상 태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각인되었다. 호요 쁘띠 로부스토는 맛있다!(지금도 시가 입문기를 어느 정도 거친 지인들에게는 이 시가를 강력추천한다.)



큐반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 호요 쁘띠 로부스토

하지만 그 시가바는 매우 가파른 언덕위에 있어 도보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가까운 더바코 3호점으로 가니 역시나 호요 쁘띠 로부스토가 있었다. 남아있는 것들을 모두 들고 와서 하나씩 하나씩 불량식품처럼 계속 까먹게 되었다. 그리고 호요 라는 브랜드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다른 호요들도 다 이렇게 맛있을까?

서울 내의 시가바 탐험 역시 계속하던 중이었기에 이번엔 직장 근처 청담동에 위치한 레솔베르라는 시가샵 겸 시가바에 들렀는데 호요 브랜드의 다른 라인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이번엔 심지어 더 길었다!

이에 호요 에피큐어 No.1, No2, 아네자도(테킬라의 '아네호'처럼 5년에서 8년 사이의 숙성을 거친 시가에는 Añejados라는 더블밴드가 붙여진다)등을 다양하게 구입했고 바로 태워보았다. 호요 라는 브랜드의 공통된 특성으로 꽃향기, 빵 굽는 냄새, 솔티, 견과류 풍미 등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느껴졌지만 역시 쁘띠 로부스토 만큼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다. 이에 박스 떼기를 하는 것이 시간, 경제적 가성비 있는 선택임을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요 쁘띠 로부스토를 박스 떼기하며 H. Upmann, Trinidad, Romeo y Julieta까지 큐반시가의 탐험을 확장했다. 더불어 유명한 다비도프 Late Hours도.


아네자도(Añejados) : 긴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섬세하고 달콤한 맛이 더해져 입안에 더 둥글고 은은해졌으며, 삼나무 근처에 오랜 세월 동안 놓여 있었기 때문에 나무 맛의 뉘앙스를 가진다.

Montecristo Churchill Añejados (7 x 47) — January 2015
Romeo y Julieta Pirámides Añejados (6 1/7 x 52) — January 2015
Hoyo de Monterrey Hermoso No. 4 Añejados (5 x 48) — January 2016
Partagás Corona Gorda Añejados (5 5/8 x 46) — February 2016
출처 : Halfwheel.com


다만, 레솔베르에 들렀을 때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는데 동그란 안경을 쓴 일본인이 매우 조급한 모습으로 특정 시가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거의 다 집어 들고 가는 모습이었는데 Cuaba(쿠아바)라는 밴드가 붙여져 있는 신기한 형태의 시가였다. 이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시가도 하나를 집어 들었고 또 돼지꼬리모양의 헤드를 가진 뚱뚱한 시가(Liga Privada No.9)와 같은 브랜드의 로부스토 사이즈의 시가(T52) 역시 하나 더 구매하게 되었다.

좁고 깊게 탐구해 보던 시가의 세계관이 이제 막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중이었다.


중동의 향신료 향기가 가득한 Cuaba와 Liga Privada Flying Pig










<시가 미니 상식>


이미지 출처 : www.holts.com


래퍼 : 시가를 감싸는 시가의 겉잎이다. 시가의 밴드와 모양 외에도 시가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래퍼다. 이 때문에 시가 제조업체는 래퍼 선택에 매우 까다롭다. 겉잎은 깔끔하고 매끄럽고 매력적이어야 하고 시가잎줄기의 맥이 두껍거나 색상이 고르지 않는 등 외관상 결점이 있는 시가 잎은 래퍼로 적합하지 않다. 시가 래퍼는 색상, 두께, 질감에 따라 다르며 시가 맛의 최대 60% 이상을 결정할 수 있다. 래퍼는 보통 내추럴(색이 밝은)과 마두로(색이 어두운)로 분류하지만, 마두로의 색이 어두운 것은 단순히 시가잎의 색이 어두운 것뿐만 아니라 처리되는 방식과 더 관련이 있다. 마두로는 색이 어둡고 달콤한 맛, 내추럴 품종은 크리미하고 견과류 맛이 난다.


바인더 : 래퍼 잎 바로 아래에는 바인더 레이어가 있다. 이것은 필러(시가 속 층)를 단단하게 감싸는 시가의 형태를 단단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시가를 피울 때 구조감 있고 부드러운 흡연의 도관(導管)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시가들은 싱글바인더 잎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더블바인더로 이루어진 시가도 있다. 펀치 빈티지 시가는 코네티컷 브로드리프 바인더 한 쌍을 이용해서 만들며 달콤하고 얼씨한 맛을 구현한다.



필러 : 바인더 속을 채우고 있으며 시가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필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가잎들은 래퍼의 풍미를 향상하고 시가브랜드 고유의 블렌딩, 시가 잎이 자란 땅의 떼루아, 시가 잎을 수확한 해의 특징, 그리고 지역별 특색을 마음껏 펼치는 장이다. 시가 장인들은 바인더 잎과 필러 잎의 수많은 조합들을 실험해 본 후 뚜렷한 맛의 변화를 표현하여 시가를 태우는 과정에 복합미를 추구하기도 하고 또는 맛의 일관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시가 필러의 밀집도를 조절해 드로우의 밀도(얼마나 뻑뻑한지 부드러운지)와 시가의 타는 속도, 흡입 시 강도 등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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