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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Feb 05. 2021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감정결핍자의 반성문

경계가 없는 일상 속 감정 결핍자의 반성문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일상을 차단시켰지만 한편으로 경계를 무너트렸다. 직장과 집이라는 경계, 일과 육아라는 경계. 살림과 자기 계발이라는 경계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공간 안에서 어울리지 않게 들어앉아 있다. 섞이지 못할 것들이 뒤섞인 채, 서로 분류되지 못한 채로 공존하고 있다. 


애를 키우는 지인들의 안부를 묻다 보면 대부분 생활패턴이 비슷하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업무 잠시 보다가 욕실 청소하고 아이 공부를 챙기고 딴짓하는 녀석을 다그치며 다시 자리에 앉히기를 수십 번. 도를 닦는 마음으로 다시 밥을 하고 그 와중에도 아이와는 ‘하지 마’ 밀당을 계속해야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빨래를 돌리고 책을 읽고 한숨 돌릴 때쯤 아이와 양치질 밀당을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눕히고 해야 할 업무를 머릿속에 그려 보다가, 그러다 까무룩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고. 사실, 잠자리에 들면서 아이에게 그제야 미안하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날도 많다. 매일이 반성문이다. 내일 아침에는 잔소리도 줄이고 그만 다그쳐야지. 하지만 내일은 쉽게 도와주지 않는다.  


경계 없는 일상에서, 돌봄이 필요하지만 정작 돌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있다. 바로 공감이다. 아이와 남편부터 부모며 친한 지인들까지 그들의 즐거움에 기뻐하고 혹은 그들의 괴로움에 공감할 새가 없이 지나간다. 때로는 공감하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소한 감정 스크래치 정도는 묵인한 채 사과도 없이 넘기며 사는 것은 아닌지. 또한 함께 분노하다가도 쉽게 식어버리고 내 일이 아니라며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의 마음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 또한 돌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잘 사는 것인가,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일상은 훅, 훅, 덤벼 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해, 투정 부릴 새도 없이 등 떠밀리며 잰걸음 치는 사이 달력은 또 한 장을 넘어섰다. 퇴근한 남편에게 “내일 며칠이지” 묻다가 스스로 현타가 오기도 한다. 


감정 근육도 퇴화한다


풍부한 감정을 갖도록 아이를 키워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웃는 얼굴보다는 언성을 높여 아이를 제어하는 일이 더 많다. 결코 육아는 우아할 수 없다. 참을성이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육아에 스스로 분노할 때가 많다. 이렇게 분노 표출이 쉬운 인간이었나 생각할 정도. 문득,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종종 으르렁대는 괴물이었다가 돌아서면 나긋한 천사 표정으로 곧잘 급변하는, 마치 변신로봇 같은 생명체 정도는 아닐지. 마음의 결을 쓰다듬는다면 지금 감정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스테디셀러에 올랐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한창 이 소설이 회자되고 있었을 때에도 나는 읽지 않았다. 일부러 책을 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표정 없는 표지의 소년이 주는 눈빛이 꽤 차가웠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책을 읽고서 다시 표지를 보면 윤재를 그만큼 제대로 표현했단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한 선배가 건네 준 책이 바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였다. 장편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몰입도가 빨랐다. 군더더기 없이 빨려 들게 만드는 문체. 이 책을 읽고서 감정이란 놈에 대해 요리조리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뜨겁게 설렐 일도 없고 환희에 찬 얼굴로 아이를 대하는 날도, 사랑 가득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를 본 날도 몇 번인가 생각할 만큼. 감정이 메마르고 있는 중이구나, 감정 근육도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감정 없는 척 사는 인생은 옳은가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윤재.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아이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마음이 자주 아려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다양한 감정을 지닌 채 평범한 인간으로, 윤재와 달리 복 받은 일상을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감정을 감추며 살고 있진 않나, 질문을 던진다. 정상적인 크기의 편도체를 갖고 살지만 실로 감정 없는 척하며 사는 것은 윤재가 아니라 우리가 아닌가. 그의 무심하면서도 따끔한 일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마지막 엔딩에서는 감정의 발포가 일어났다.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불꽃이 사방으로 터지듯 감정의 여러 형태가 크윽, 하고 뱉어져 나왔다. 그리고 안도와 감사. 윤재에 대한 격려의 마음이기도 했지만 감정 근육이 굳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기도 해서. 무뎌지지 말자, 녹슬지 말자, 모든 면에서. 감정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아닌 척 없는 척하지 말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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