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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Apr 07. 2024

투표하지 않을 자유

하지만, 당당하게 찍어야지.

  나의 출근길에는 아주 다양한 역할을 하는 주민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형폐기물 배출 신청을 하거나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일이 있을 때 주로 방문을 하곤 하지만, 상반기와 하반기에 예비군 훈련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이내믹한 변화가 자주 일어나는 주민센터는 어제까지 ‘사전투표소’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을 반겼다. 뉴스에선 지금까지의 총선 사전투표율중 역대 최고였다고 하니 평소보다 많은 인원들이 ‘사전투표소’로 명명된 주민센터를 비장한 마음으로 찾았을 것만 같다.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금요일엔 회사에서도 선거와 투표라는 단어가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선거당일 ‘투표사무원’이나 ‘개표사무원’으로 참가하는 직원들은 맡게 될 업무가 생소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아침 일찍 투표를 했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투표를 하고 온 직원, 또는 사전투표소까지 갔지만 긴 줄에 돌아선 직원 등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졌다. 정부나 선거관리위원회 또는 정당들의 투표독려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를 진행했다는 소식에 다소 놀랍기도 했다.


  나는 '선거'를 직접 경험하기 이전에 이론으로 먼저 접했다. 대학생활과 지금은 폐지된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에 「헌법」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대게 헌법을 배울 때는 헌법총론, 기본권론, 통치구조(+헌법소송)론으로 나누어서 학습하게 되고 통치구조 부분에서 국회, 대통령, 법원 등을 배우게 된다. 입법•사법•행정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여기서 배우는 것이다. 특히나 국회와 대통령을 공부하며 ‘선거’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헌법은 최상위 규범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거나 추상적인 내용만 존재하고, 위임받은 법률에서 자세한 내용을 기술하도록 되어있다. 선거도 그렇다. 헌법 제24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만 기재되어 있으며, 국회의원 선거 및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각 조항들에서 선거의 4대 원칙이(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 명시되어 있다. 이외에 선거와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은 「공직선거법」에 위임되어 있다. 이 공직선거법은 선거시즌만 다가오면 개정되는 터라 많은 현직 공무원들과 수험생들을 멘붕 오게 만들지만, 일반 근로자들에게는 근로자들의 선거권을 보장받게 해주는 고마운 법이기도 하다. 심지어 법에서는 투표시간을 사용자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고용주에게는 1천만 원이 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선거권자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용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까지 선거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지만, 낮은 투표율도 한몫한다. 우리나라는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한 지역구에 100명의 유권자가 있고 투표를 30명만 했을 경우에 그 30명이 투표한 후보자 중 1순위가 전체 100명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불합리해 보일 수 있는 현행투표제도를 의무투표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도 종종 나오긴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투표를 하지 않은 선거권자들의 의사 또한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 2003. 11. 27. 2003헌마259
차등 없이 투표참여의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선거권자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최소투표율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투표실시결과 그러한 최소투표율에 미달하는 투표율이 나왔을 때 그러한 최소투표율에 도달할 때까지 투표를 또다시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 선거권자들로 하여금 투표를 하도록 강제하는 과태료나 벌금 등의 수단을 채택하게 된다면 자발적으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선거권자들의 의사형성의 자유 내지 결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축소하고 그 결과로 투표의 자유를 침해하여 결국 자유선거의 원칙을 위반할 우려도 있게 된다.


  본인이 투표하기 싫다는데 강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를 ‘자유선거’라 한다. 우리의 헌법 속 ‘선거의 4대 원칙’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투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게 된 것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투표’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다행히도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된 좋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헌법시간에 가장 처음 배운 내용이 선거철만 되면 떠오르기도 하고  몇 분도 걸리지도 않는 투표도 하지 않은 채 선출된 대표자를 욕하는 것은 뒷담화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온 터라 당당하게 앞담화를 하고자 투표를 했다.

나는 2024년 4월 6일에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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