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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Apr 21. 2024

상고를 기각한다.

법은 무섭고 인생은 실전이다.

  나의 늦깎이 입대일과 (前)여자친구 언니의 생일에 불과했던 4월 12일에 쉽게 잊지 못할 이벤트가 추가됐다. 지금까지 홀로 법무업무를 담당하며 맡게 된 가장 큰 사건의 마지막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시작할 당시부터 날카로운 언론이 동행했던 탓에 감독기관인 주무부처에서도 늘 판결의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건이었고,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대역죄인이 될지 개선장군이 될지를 판가름 지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도 승소했다. 공공기관이자 피고였던 나의 회사가 잘못한 게 없다는 내용이었다. 판결문이 송달되기도 전에 법원 홈페이지에서 결과를 먼저 접했을 때, “이겼다.”라는 쾌감이 가장 먼저 들긴 했지만 그렇게 엄청나지는 않았다. 얼마 뒤 판결문이 나오고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상하리만큼 공허했고 공포감이 상당했다. 


  소장이 송달되어 오고 상고심이 끝나기까지 1115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이 소송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소송의 상대방인 원고와 법무담당자인 ‘나’ 하나뿐이었다. 판결문이 출력되기를 기다리면서 복합기 앞에서 둘러본 회사의 모습은 언제 이런 소송이 있었냐는 평온한 일상 그 자체였다. 서슬 퍼런 칼날 같았던 언론의 펜촉에서도 잉크는 나오지 않았기에 시끄러웠던 시작과는 달리 그 끝은 적막했다.


  적막했던 만큼 공포감은 상당했다. 그 공포감은 소송의 상대방이 나에게 보낼 수 있는 보복에 대한 우려도 아니었고, 그저 '法'에 대한 무서움이었다. 학생 시절 '법'을 '글'로만 학습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법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회사가 패소했었지만 항소심에서는 멋진 뒤집기로 승소했었고 마지막 상고심은 항소심의 결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끝이 났다. 이렇듯 다이내믹했던 사건의 끝은 3쪽짜리의 판결문이었다.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내가 공포감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3쪽에 불과한 판결문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합기에서 막 출력된 따뜻한 3쪽짜리 판결문엔 각 당사자들의 이름과 주소 등 인적사항과 소송대리인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곤 원심판결의 번호와 판결주문이 위치한다. 판결주문은 마침표 포함 21글자로 긴 여정의 끝을 결론지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는 125글자가 전부였다.

  상고이유를 이 사건 기록 및 원심판결과 대조하여 살펴보았으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우리가 종종 뉴스에서 접하는 대법원의 판결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상고심은 법률심이기에 법리적으로 쟁점을 다투는 사건만 본격적이고 집중적인 심리를 통해 판결을 내린다. 그 외의 사건들은 대부분 ‘심리불속행기각‘으로 끝나버린다. 말 그대로 심리를 계속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형사사건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해 대법원으로 접수되는 사건 중에서 70% 정도가 심리불속행기각으로 끝나버린다고 하니, 학생시절 기본서에 마주했던 다양한 판례들은 누군가들의 치열한 논리싸움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대중교통이 끊겨버린 야근의 어느 날 촬영한 대법원 청사

  심리불속행기각 판결에는 구체적인 판결이유가 명시되지 않는다. 위의 125글자 정도가 전부이기에 각 소송당사자들은 왜 졌는지, 이겼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항소심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이렇듯 3년이 걸린 기나긴 소송의 끝에서 내가 마주한 공포감은 판결이유도 알 수 없는 2 문장 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법'이 보유한 강력한 '힘'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단순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인생은 실전'이라는 우스갯 말이다. 이 말은 보통 범법자들을 대상으로 참 교육을 할 때 주로 사용하지만, 오늘의 나에겐  한 번뿐인 인생에서 법을 무기로서 사용할 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기고 싶다. 물론 판결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갔다는 건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의사표시이고 쉽게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법'을 무기로 삼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무서운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과 수백 명의 종업원이 딸린 회사의 운명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 그만큼 법은 휘두를 거면 정확하게 휘둘러야 하고 어정쩡하게 휘두를 거면 안 하니만 못하다. 그렇기에 법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고,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할 때만 사용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법'은 분명히도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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