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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May 04. 2024

사투리는 못 참지!

고향에 대한 마지막 기억과 내가 살아온 발자취

  정오 즈음에 지하철을 타고 이촌역으로 향했다. 2번 출구 방향의 '박물관 나들길'을 나와 오른쪽으로 쭉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곳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건축물의 행정적인 구분은 전시시설에 해당하지만, 외관만 보면 고급 백화점이 더 어울릴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바로 한글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를 기반으로 우리 전통 가옥의 처마와 단청을 본떠 만든 국립한글박물관이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바로 옆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한글'이라는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 있는 곳이기에 특별전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빠지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설립 논의가 시작되기도 이전인 2007년에 이촌역의 병기역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확정되었으니, 이제는 '국립중앙·한글박물관'이나 '박물관 공원' 정도로 변경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박물관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친절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곧장 올라가면 자그마한 카페와 상설전시관을 마주하게 된다.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도 훌륭하지만, 나로서는 여러 번 보아 왔기에 오늘은 물품보관함에 잽싸게 가방을 넣어 놓고선 다시 에스컬레이터에 두발을 실었다.  서서히 에스컬레이터의 끝이 다가올 때쯤, 오늘 내가 국립한글박물관에 방문한 목적인 개관 10주년 특별전 '사투리는 못 참지!' 전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이번 전시의 생생한 콘텐츠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방언(사투리)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넘칠 듯이 담겨 있다. '이 땅의 말', '풍경을 담은 말', '캐어 모으는 말'로 구분된 이번 전시에서는 방언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방언과 문헌 속에 드러나 있는 방언, 그리고 이 방언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힘썼던 '조선어학회' 등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다양한 '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건  표준어만 사용하는 줄 알았던 서울의 '말'에도 사투리가 있다는 점과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등의 신조어들도 '사회 방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다는 점이었다. 콘텐츠적으로는 전국팔도의 사람들이 모여 각 상황에 따른 말을 표현하는 '팔도의 말맛' 영상이 눈길을 끌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탓에 한참을 서서 집중하곤 했다.  


  오랫동안 기억될 이번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나오니, 한 가지 물음표가 생겨버렸다. 사투리를 쓰고 있는 당사자들의 생각이었다. 전시의 곳곳에서 "사투리는 민족문화이며, 자부심이다."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을 수 있었지만, 개별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의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투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략하게나마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10%의 결론을 위한  90%의 서론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오기 전까지 부산을 떠나본 적 없는 나로서는 사투리는 고향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서울 근처에서 살아왔기에,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의 말을 빌리면 특유의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 사투리가 내가 살아온 흔적에 따라 애매하게 희석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투리를 완전히 떠나보낸 건 아니다. 급작스럽게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해서는 안될 비속어가 나올 때 또는 부모님이나 고향친구들과 통화할 때면 어김없이 나는 부산토박이가 되곤 한다. 무의식적으로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회사에서 경상도 출신의 동료들과 식사를 했을 때 자연스레 대구와 부산 등의 사투리로 대화를 꽃피웠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주위의 다양한 시선들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꽤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처럼 서울에서 각 지역의 사투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전히 표준어를 요구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지역감정 때문인지 표준어에 대한 효율성 때문인지 사투리는 ‘시골말’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지만 크게 대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사투리는 표준어의 반대말이 아니라 다양한 우리말의 하나일 뿐이고, 개인적으로는 그저 내가 살아온 고향에 대한 기억과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냥 귀여워서 넣어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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