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우리가 무언가를 신뢰한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이러구러라는 순우리말에 알맞게
말 그대로 그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개개인의 관념속에서
개인과 일정정도의 신뢰를 구축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네이버 로그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에
우리는 그 비밀번호나 내용이 노출되리라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든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져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전부터 그렇게 잘 써왔으니까' 라는 생각 속에서
예로든 매체들을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대 사람의 신뢰,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일에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많아질 수록,
그 신뢰 구축에 대한 비용이 늘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이나 많은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면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발맞추기에
점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지점을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은
우리 사회 전체의 개인간의, 개인과 사회간의 '신뢰비용'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신뢰함과 동시에 신뢰하지 않는 모순적인 양태를 띈다.
웃긴 일이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동시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상황임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신뢰를 하면서 불신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아주 결과론적인 접근 방법을 띄고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예로, 조의연 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결정을 기각하였다.
이를 근거로 판사의 신뢰도를 의심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른 기각결정이나 구속결정에 대한 신뢰도의
기준은 개개인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판단에만 딴지를 걸뿐
본인의 희망의 범주안에 존재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주 결과론적인 모습이라는 뉘양스를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 사회의 국민들의 이러한 태도를 짓게 된 원인을 찾는다면,
일부 사법부의 잘못들, 일부 공무원들의 잘못들, 각 분야별 종사자들의 잘못들이
합쳐진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러한 잘못들 속에서 살아옴에 따라 이러한 의심을 하고
지적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지적 또한 잘못이라고 여기기에는
각 개인이 받은 상처와 실망이 패인 깊이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세월호의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 대두되고 있는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이런 고민은 끝 없는 뫼비우스 띄와 같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계속해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원인을 끝가지 파헤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그 원인의 중심에 서있는, 문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에 대한
처벌과 동일한 사례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등장할 수 없도록
사려깊은 후속 조취를 취하고, 관심을 놓지 않는 것에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올바르게. 정당하게. 그렇게 되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믿음의 비용은 줄어들고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