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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Oct 28. 2024

읽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좋은 글과 술.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들어간 책이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데뷔(?)한 지 오래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빠져든 정지아 작가의 에세이다. 게다가 주제가 '술'이다. 자그마치 내가 매일 마시는 그것에 대한 책이라니! 책을 들자마자 한숨에 다 읽어나갔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주정뱅이로서 핑계를 대자면, 나는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다.(!) 취기를 빌어 자신의 속마음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시는 거고, 술자리를 비추는 조명과 공간을 떠다니는 여러 가지 안주와 술냄새를 마시는 거고, 그 술자리를 맴도는 감성을 마시는 거라고 항변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정지아 작가도 그랬다. 작가가 말해주는 술자리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웃음이 나거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를 닮고 싶다고 느낀 건 두 가지다. 사람 만나는 걸 업으로 하고 있고, 거의 매일같이 사람들과 술을 마셔대는 나다. 그런데 요즘은 취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보다 더 많이 떠들어댈 때가 있다. 그런 저녁을 보냈노라면 다음 날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생각이 많아진다. 눈을 뜨고 이부자리를 개고 샤워를 마칠 때까지 어제 내가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를 복기하며 '왜 그런 이야기를 했지', '이때는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대부분 이미 질러버린 말을 후회한다. 정작 상대방이 해준 말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다르다. 에피소드마다 상대방과 어떻게 알게 됐고, 인연을 맺어왔는지에 집중한다.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말 한마디에 천착해서 좋은 글을 써냈다. 말하기보다 듣고, 술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실은 술 그 자체보단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하기보단 들을 때 사람은 배운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또 하나 부러웠던 점은 그의 주변에 항상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가끔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일로 엮인 인연들이 내가 명함을 잃었을 때 어떻게 될까. 내가 시골 골방에 처박혀있을 때 술 한 병 들고 찾아올 누군가가 있을까. 그러려면 인간 나 자체로 매력적인 사람이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 술도 혼자 마시면 재미가 없다. 나이 들어서도 같이 마실 사람이 있으려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이 책에서 '조니워커 블루'를 최고의 술이라고 예찬하는 통에 나도 조니워커 블루에 발을 들였다. 자그마치 2병이나 사서 쟁여놓고... 벌써 한 병을 다 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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