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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May 26. 2024

그물 속 바람처럼

중흥사 템플스테이 

너무 오랜만에 브런치를 쓴다. 


그동안 이직을 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관계를 고민한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오랫동안 놓았던 것 같다. 작년에 힘겹게 브런치북을 완성해 공모전에 내기도 했지만, 역시 글쓰기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힘들게 분량을 채워 낸 글과 깊은 고민과 퇴고를 거쳐 낸 글은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또 한동안 글을 안 쓰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일종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데도 그렇다. 매문(賣文)과 내 글을 쓰는 건 다른 것 같다. 대단한 내용의 에세이도, 엄청난 반전이 있는 소설도 아니지만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 올 들어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이 가득 차있는데, 생각 정리가 잘 안 된다. 이럴 땐 글을 써야 한다. 




마음이 복잡해져 지방으로 여행을 갈까 하다가 귀찮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게 '템플스테이'였다. 최근에 지인 추천이 있기도 했고,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조용히 쉬다가 올 수 있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스님과의 차담이 기억에 남는다. 원래 '휴식형' 템플스테이에는 차담이 따로 없다는데, 내가 간 날은 대학생들이 워낙 많아서 주지스님이 "혹 차담하고 싶은 사람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냉큼 손들었다. 그랬더니 스님이 "고민 상담을 원하느냐"라고 말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차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은 속세에 절어있는 나로선 최근 차(茶)에 빠져있었던 게 차담 신청 이유였다. 스님이 어떻게 다도를 하는 지도 보고 싶었고, 스님이 마시는 차도 궁금했다. "보이차는 가짜가 많은데, 진짜 좋은 보이차를 먹고 싶으면 스님이 주는 걸 먹으라"라고 했던 지인의 말도 기억이 났다... 실제로 스님이 주신 차는 보이차였고, 기품 있게 맛있었다. 


북한산 기슭 아래 절 스님이 머무는 공간. 스님은 이 공간에서 자기 수양을 하고, 쉬고 잠에 든다고 했다. 해가 길어진 5월이라도 밤 8시가 되니 산기슭에 있는 공간에는 이미 어둠이 들어찼다. 스님과 나, 그리고 20대 여성, 이렇게 셋이서 차를 마셨다. 우리 사이엔 촛불 몇 개가 켜져 있었고,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공간을 매웠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스님이 물었다. "고민이 있느냐"라고. 

나는 내 고민을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차만 마실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저는 불만이 많은 사람 같아요. 벌써 세 번째 회사를 옮겼는데, 여기도 거지 같아요." 


스님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욕심이 많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거죠. 바람처럼 살아야 돼요 바람처럼."


"아까 명상할 때도 말했죠? 내 몸은 나인데, 내 몸도 내 맘대로 안되잖아요. 그런데 다른 건 내 마음대로 되겠어요? 사람들은 원인을 다 밖에서 찾으려고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불만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럴 땐 이 사람은 틀린 게 아니라 나랑 다른 거일뿐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차피 우린 다 흙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살아생전 모든 걸 갖겠다고 아등바등해요. 어차피 다 갖고 가지도 못할 텐데..."


평소에 자기 계발서도 안 읽는 편이다. 오글거리는 말도 싫고, 너무 뻔하디 뻔한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 밤, 스님의 말들은 꽤나 위로가 됐다. 

산기슭에 있는 절이라는 공간, 따뜻하게 갓 내린 보이차, 정신수양이 필요하다는 스님의 말. 이 삼박자가 맞으며 고집불통인 내 마음속에서 공간이 생겨났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어느덧 일한 지 10년 차가 넘어가다 보니, 겸손은 저 멀리 넣어두고 자만심이 먼저 앞서나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단 밖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때도 많아졌다.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문제지', '내가 아니라 회사가 문제지', '내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지'. 물론 '정신승리'를 할 땐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스님 말씀대로, 정신수양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결국 괴로운 건 나일뿐.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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