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종화 Apr 06. 2020

난생처음 킥복싱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이 책 <난생처음 킥복싱>은 저자가 수많은 땀방울로 쌓아올린 운동 연대기의 첫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면 몸이 바뀌는데, 몸이 바뀌면 삶과 가치관도 바뀐다. 책을 읽으며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바뀐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오늘(2020년 4월 6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했다. 2013년부터 아침에는 수영을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수영장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유튜브 필라테스 영상을 보고 따라한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씻은 후 체중계에 올라서니 61kg이다. 살짝 힘을 주니 윗배 근육이 성을 내는 모습이 보인다.


 2012년,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때에 나는 키가 174cm인데 체중은 84.5kg이 나갔다. 바지 치수가 36이었다. 혈압, 혈당, 중성지방 모두 약을 먹어야 할 경계치를 곧 돌파할 기세였다. 허리와 목과 어깨가 매일 뻐근했고, 특별히 무리한 일을 하지 않아도 움직이는게 고통스러울 정도의 허리 통증이 한 달에 한 번은 찾아왔다. 2010년 11월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주말에 애랑 10분만 보내도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80이 넘는 거구가 무색하게, 자그만 아이를 조금만 안고 있어도 얼굴이 검어졌다. 어여쁜 아이랑 보내는 시간도 기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일을 피했으며, 일상에서 점점 무기력이 더해갔다. 이대로는 40대에 돌연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운동을 해야지 마음먹고 있던 차에 대학교 때 모임에 나갔다. 10여 년 만에 만난 여자 후배가 나보고 ‘곰돌이 푸우’가 되었다며 손가락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를 찔렀다. 이보다 더한 굴욕이 없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황보름 작가가 2019년 연초에 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저질 체력과 부실하고 아픈 몸을 바꾸고 싶어서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선택한 운동이 남다르다. 무려 킥복싱 체육관에 등록했다.


 저자는 처음 킥복싱을 시작한 이래로 SNS에 운동을 하고 난 후기를 올렸다. SNS 친구를 맺고 있어서 나도 읽었는데 금세 팬이 되었다. 코치의 지도아래 낑낑대며 팔과 발을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운동을 하며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풀어냈다. 유난히 저질인 체력으로 펀치와 발차기를 하는 모습이란 솔직히 허우적 아니겠는가? 유명한 프로 스포츠 선수의 경험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저자만의 처절한(?) 운동기는 독보적으로 재밌었다. 솔직히 걱정도 들었다. 얼마나 오래 갈까? 그러나 이내 그런 걱정은 내려놓았다. 대환장파티에 가까운 고군분투를 묘사한 후, 몸과 마음의 변화 또한 점차 글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러면 즐거움을 맛보며 꾸준히 운동을 하겠구나 싶었다. 책에서는 SNS에서 묘사한 정도의 처절함이 없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와는 달라진 지금의 시점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내 마음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래서도 안되고 그러기도 어렵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수십 년을 살아도 잘 안된다. 그러나 내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걷고, 뛰고, 물건을 들 수 있다. 물론 상당한 고통이 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기가 돌 무렵 처음 걸음마를 할 때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상처가 생기는가? 그래도 몇 달이면 제법 잘 걷고 심지어 뛰기까지 한다. 10분을 걷고 무릎이 시큰거렸던 2012년의 나는 1년이 지난 후 탄천을 따라 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여름에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때, 25m 레인은 히말라야 산맥처럼 느껴졌다. 1년이 지난 후, 1km를 쉬지 않고 왕복으로 수영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100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한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못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성취에서 비롯된 기쁨은 어떤 쾌감보다 강하다.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이룬 즐거운 성취에 미소를 지으며 공감했다. 이 기쁨을 알면 내 몸을 내가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현대인은 살면서 자신감을 얻을 기회가 별로 없다. 내 분야에는 날고 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얼마나 잘생긴 외모와 멋진 몸을 가졌는지, 포르쉐를 탄 저 남자는 왜 저리 빛나 보이는지……지인의 SNS에는 외국에서 보낸 근사한 밤이 화려하게 떠오르고 등등.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시절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은 탈락했기 때문에 좌절하고, 살아남은 사람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나는 왜 이리 못난 사람일까? 게다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 달라진다. 운동을 하면 알게된다. 몸은 정직하다. 쏟은 노력과 떨어진 땀방울만큼, 딱 그만큼, 몸은 바뀐다. 어떤 거짓도 기만도 들어올 틈이 없다. 세상의 모든 정의와 공정을 쏟아부어도 몸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내가 노력한만큼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감을 주고 자존감을 높인다. 거짓이 아니라 정직한 내 노력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다. 


 몸은 곧 나다. 내 마음도, 내 의지도, 내 노력도 내 몸에서 나온다. 몸에 대한 자존감의 획득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얻는 일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신이 운동에 쏟은 노력처럼 성실하게 글로 옮겼다. 작가의 필력은 이 성실한 과정을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운동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운동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사람도, 지금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운동을 하다가 중단한 사람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운동의 즐거움과 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케일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