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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Apr 21. 2021

연중무휴의 사랑

나와 당신을 감싼 여러 겹의 흔적들

임지은 작가가 쓴 글은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낸다. 나는 특히 이런 글을 좋아한다. 일상의 작은 사건에서 심상이 생겨나고,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사건의 다양한 면을 끌어낸다.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쉽게 단죄하지 않고, 사람의 복잡한 마음과 상태를 두루 살핀다. 모든 일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같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하나를 건드리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에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탐구하며 나아간다. 나는 제대로 알기도 전에 포기했는데 말이다. 이토록 부러운 글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책 제목처럼 작가가 ‘연중무휴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엄마에 대해 말하며 이렇게 썼다.


 “내가 아는 가장 제대로 된 사랑을 나도 흉내내보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름대로 노력도 했다. 글쓰기 강좌도 다녔고, 서평도 열심히 썼다. 조금은 글이 늘었지만 금세 한계에 다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관심이 없고 무심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저 문장을 읽고 바로 깨달았다. 사랑에 서툴고 사랑에 인색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유아기에 다른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배우고 익힌다. 감정이 우리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모방을 통해 익혀야 비로소 표출될 수 있다. 최고의 사랑을 흉내낸다는 말은 최고의 사랑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랑을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랑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사랑을 잘 못하고, 사랑을 하지 않으니 관심이 없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한채, 내 머릿속 관념만 가지고 글을 쓰니까 더 나아갈 수 없다. 주변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른다. 입장이 없다. 


 ‘연중무휴의 사랑’을 하는 저자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사랑을 하는 대상의 곁에 함께 선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같은 편을 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 곁에 서 있지만 편을 들지 않을 때 배신감을 느낀다. 가족이나 연인에 대해 더욱 그렇다. 임지은 작가는 용감하게, 곁에 있는 이와 다른 편을 들기도 한다. ’나와 당신을 감싼 여러 겹의 흔적들’을 살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러 겹의 흔적은 사랑해야만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 편을 들지 않는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한 겹도 제대로 볼 수 없다. <K가 김희철에게 했어야 하는 건>은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을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왜 그래야 하냐면 “우리는 윤리적으로 우월해지려는 게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해 윤리를 꺼내올 뿐”이기 때문이다.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론도 단일한 논리로 사람과 세상을 규정할 수 없다.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진 인간의 세상은 ‘숱한 가능성을 포용하는 여러 겹의 해석’을 요구한다. 사랑이 없다면 이 어렵고 지난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론 이전에 사랑이 있다. 이 사랑에는 숭고함이,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사회적 약자가 발언권을 얻고 권리를 회복한다, 정체성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 누구나 생존을 보장받아 안전하게 사회적 자아를 실현한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완벽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뿐이다. 구원은 이상향이 아니라 바라고 실천하는 데에 있다. ’연중무휴의 사랑’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나는 쉽게 구원에 다다르는 길을 찾았다. 깊은 성찰 없이 원하면 저절로 주어지길 바랐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할지 모른채 갈팡질팡했다. 이제는 실마리를 찾았다. 헝클어진 실을 풀어나가는 일은 내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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