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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HAN Dec 13. 2017

[WAESANO] 작지만 당당한 페스티벌

LOCK-IN STAGE Vol.3 작으니까 당당한기다!

 WSNO의 공연에디터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내게 어떤 최후의 ‘끈’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공연기획활동을 하며 내가 만든 공연을 보는 것은 늘 뿌듯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정작 부산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공연들은 다 놓치고 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을렀고 교만한 행동이다. Lock-In Stage를 연재하며 억지로라도 시간을 쪼개가며 부산의 브랜드공연들을 찾아다니며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한다. 덕분에 좋은 공연을 마음껏 누리고 공연을 만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글도 글이거니와 나 자신에게도 큰 공부가 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큰 경험이 되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공연은 조금은 특별하다. 아니 절대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공연일수도 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생긴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예상보다 중고등학생들의 사고는 월등히 뛰어나며 그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는 왠만한 기성세대가 일을 처리할 때의 모습보다 훨씬 진지하고 높은 집중도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까지 자체적으로 만든 ‘작지만 당당한 페스티벌’ 줄여서 ‘작당한 페스티벌’을 여러분께 소개하겠다.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된지도 어느덧 6년이나 흘렀다. 그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 경험한 더없이 많았던 즐겁고도 아픈 기억들을 지나며 나는 순수라는 것을 저버린 채 사회라는 곳에 적응해가고 있는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선배앞에서는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분위기를 맞추고 있고 후배들 앞에서는 몇몇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주 한병을 앞에 두고 그들의 귀엔 들어가지도 않을 잔소릴 해가며 내가 싫어했던 그 얼굴을 하고 ‘꼰대’라는 이름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청소년때는 이불킥을 하고싶을만큼 부끄러운 기억도 있지만 누구나 지나오듯이 참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을정도로 순수했던 시기도 있었다. 부족한 문화생활 속에서 늘 갈증을 호소해가며 책이며 영화를 파고들었고, 나의 감성은 특별하다며 밖에서는 김현식, 유재하 등의 음악을 듣는 코스프레를 했지만 집에서는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보던 허세가득한 모습도 있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서 문득 그 때의 기억이 솟아날 때가 있다. 그 기억이 행복했고 깨끗했구나라는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갑자기 저 깊숙한 곳에서 뭔지모를 우울함이 확 밀려온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 의식 등을 나타냈던 그 때의 내 얼굴이 지금은 어딜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 청소년시절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게 될 때에는 지금 과연 나는 그때 다짐했던 모습대로 내가 꿈꿨던 어른의 모습을 향해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온천천 똥다리를 찾았다. 늘 다양한 문화행사들로 부산대 일대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곳. 평소완 다르게 이 날만큼은 그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 기존에 축제에서 느낄 수 있는 열기라는 표현보다는 상쾌하다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편안했고 아련했다. 어떤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거나 출연자들이 공연을 기가막히게 잘하지도 않았다. 오직 ‘청소년’ 그들이기에 가능했던 연출이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 작당한 페스티벌. 3년간 축제를 이끈 기획자가 스스로 놀랄정도로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까지 이어질지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3년전 지역에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모여만든 네트워크 ‘Studio 54’에서 축제진행을 맡아 첫 개최를 하게된 축제는 당시 멤버였던 박태양군이 Studio 54에서 독립한 후 2회부터 자체적으로 기획을 맡아 청소년 기획단을 조직하여 올해까지 진행해 오고 있다.

‘Studio 54’ 이야기를 조금 짚고 가고 싶다. 2년 전에 ‘아지트’를 왕래하던 시절 그 곳에서 각종 소품을 이용하여 동영상을 찍던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일종의 UCC 영상이었는데 그 퀄리티가 기존에 소모되던 일회성 영상이라기보다 청소년시절에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을 무수한 고민 끝에 작품에 녹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한편으론 ‘애들이 참 별나네..’라는 생각도 어느정도는 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후로도 ‘폐지 폐스티벌’과 같은 축제와 장애인 인권단체와의 협력행사 진행 등 부산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화행사들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에게 허락된 청소년 시절을 매우 알차게 꾸려가고 있었다.

한명한명 전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났던 54 멤버들은 전부 어려도 배울 것이 많았던 친구들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그 시기에 누구나 그렇듯 어딘가로 휩쓸려 간다거나 누군가가 무언가를 시키길 기다린다거나 하는 모습은 전혀 보질 못한 것 같다. 늘 적극적이었고 거침없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만큼은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여느 또래들처럼 ‘EXO’같은 아이돌에 푹 빠지기도 하는 영락없는 청소년이기도 했다. 그저 아름답다라는 수식이 가장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시간이 흘렀고 멤버 대부분은 대학교를 가거나 청소년을 넘어선 자신의 길을 가기위해 각자 뿔뿔히 흩어졌고 Studio 54 역시 예전만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개개인별로 꾸준히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또한 이후로 부산 청소년 활동은 매우 다양해졌고 펼치는 활동들 역시 체계화되어 영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으므로 Studio 54의 활동이 아주 의미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공연은 별로였다. 연주는 군데군데 틀렸고, 보컬의 음정은 나갔으며, 그다지 개성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별로여도, 틀려도, 음정이 나가도, 개성이 없어도 개인적으로 인정되는 무대였다. 늘 소외되고 무시당하기 일쑤이던 저 친구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는 날이 1년에 몇일이나 될까. 이로 인해 늘 PC방과 노래방과 같은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소비되던 그들의 여가가 부산 번화가 한복판에서 벌어짐으로써 그 날 하루만큼은 주인공으로써 즐기고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간혹 우리가 청소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비행’에 그 초점이 맞춰있는 것 같다. 청소년이니까 하면 안되는 것들, 사회에서 만든 규정으로 인해 금지되는 것들로 인해 그들의 행동은 단정되어지고 쉽게 일반화 되는 경향이 많다. 비단 비행만이 청소년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건강, 교육, 인터넷 등 다각도로 접근해서 풀어나갈 일들이 대단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는 현재에 직면해 있다.


최근 청소년 축제나 행사들의 슬로건들 중엔 ‘청소년의 목소리’, ‘힘껏 소리를 질러!’ 등 표출에 관련된 문구들을 많이 보게 되는 데 그 이유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요새는 ‘지르면 뭐해. 들어는 주나?’ 냉소적인 시선까지 추가되는 모양이다. 그만큼 한국의 청소년들은 표현에 있어 대단히 억눌리며 살아오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을 어른들은 ‘설친다’라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수직적인 사고방식 덕분에 그들은 대학교에 와서도 자아형성이 부족한 상태로 교수에게 질문한마디 못하고 대학생의 자유만을 누린 채 혼란에 빠지게 된다.


대학교에 와서 학과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겠다며 떠돌아다닐 때 들었던 생각은 조금만 더 일찍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마음껏 했더라면. 좋은 대학교를 가야한다는 주변의 말보다 내 안의 소리를 더 열심히 들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고도 간단한 방법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닥치고 공부해’라는 말에서 ‘닥치고’는 좀 빼자. 공부는 알아서 할테니까.

세 번째 작당한 페스티벌의 마지막 피날레는 똥다리라는 장소적 특성과 축제의 재미를 가장 잘 이끌어낸 무대였다. 출연진과 스탭, 관객까지 한데 어울려 장식한 마지막 무대는 힙합크루 ‘빌리야드’의 능수능란한 무대매너로 축제의 마지막을 가장 축제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목마름을 부르짖듯 그 어떤 무대의 관객보다 청소년관객의 호응은 열광적이었고 이에 더해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까지 함께 그들을 응원하듯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해주었다.


취재 덕분에 여러 공연들을 보게되지만 이번 공연은 아마 실력면에서 가장 아쉬운 무대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떤 무대보다 편안했고 잊고있던 나의 청소년 시절의 생각들까지 회상 되며 다시금 그 날의 기억들을 끄집어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중간점검해보는 시간까지 가지게 되었다. 대단하다. 축제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다니.


축제를 총지휘한 총감독 박태양군에게 혹시 꼭 넣어야 할 내용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당한 페스티벌을 통해 어린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 친구들이 당당히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순화했다. 원본은 차마..) 축제를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가 많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더불어 젊은 예술가를 응원하는 든든한 젊은 관객들도 함께 성장하길 기원한다.


작지만 당당했던 그 날의 축제가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거 없다. 내년에도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2015. 11. 11. WAESANO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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