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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HAN Dec 13. 2017

[WAESANO] South Punk League

LOCK-IN STAGE Vol.5 지금 당신이 마주해야 할 공연

“왜 사람들이 펑크는 듣지 않을까요?”


늘 낙천적이고 순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표정과는 달리 머릿속은 진지한 고민 일색이었다. 음악을 듣는 대중의 귀는 고공행진 하듯 높이 올라간 것이 사실이지만 그 귀가 가진 색깔이 총천연색인지 단지 본연의 살 색 한가지인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여전히 매니아들의 문화로 머물러 있는 펑크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자기신념을 가지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펑크밴드 싸우스나인의 리더 양재동은 저 한마디로 압축시키는 듯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저 한마디를 난 그날 밤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왜 듣지 않을까를 고민하려 하니 순간 펑크라는 장르가 모호하게 다가왔다. 펑크가 뭐지? 크라잉넛? 노브레인? 사람들은 펑크를 안 듣는 게 아니라 펑크라는 장르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중학생들의 노스페이스처럼 펑크라는 장르를 입었으나 내가 무엇을 입은 지는 모르겠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장르가 가지고 있는 철학을 알지 못한 채 마치 유행 같은.. 그런 거 말이다. 한국의 모든 장르는 아이돌이 삼키고 있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 날 밤 그들의 라이브는 일종의 발악이었다. 세상을 향한 저항을 마지막까지 쥐어짜 낸 듯 강했고 씁쓸했다.


온 세상이 캐롤을 BGM 삼아 달달한 밤을 연출하고 있던 2015년 12월 24일. 경성대 Vinyl Underground에서는 거칠고 우악스런 사운드가 하얀 케이크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듯 크리스마스를 만끽하는 청춘들에게 호기심을 끌게 했다. 15번째 South Punk League가 막을 올린 것이다. 첫 회부터 공연의 기획을 맡아 부산에 펑크 보급에 힘썼던 싸우스나인을 필두로, 부산 펑크의 큰형님 스톤드, 부산 유일의 스케이트 펑크밴드 사이드카, 매력 넘치는 파산자들 뱅크럽츠, 서울에서 달려와 준 ‘홍대 피터 팬’ 초록불꽃소년단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크리스마스이브까지도 취재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도 사실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공연장 앞에 도착했고 난 현명했던 나의 선택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둑어둑한 공연장 내에서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삼삼오오 무리 지은 사람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다수의 클럽공연이 그렇겠지만 뮤지션들 역시 공연 시작 전 무대 밑에서 지인들과 함께 맥주를 한잔하기도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말 분위기에 흥이 올라 보였다. 이렇게 뮤지션과 관객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 못난 것이 아닌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게 각자의 영역에서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파산자들의 크리스마스 행진 “THE BANKRUPTS”


오프닝을 맡은 밴드는 ‘파산자들’이라는 뜻이 사뭇 진지하게 다가오는 ‘뱅크럽츠’. 기존과 다르게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무대를 꾸몄는데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멋지게 고국으로 돌아와 퍼레이드를 벌이는 듯한 느낌의 웅장한 Intro가 앞으로 펼쳐질 장장 4시간의 사우스펑크리그를 기념하는 듯. 확실한 시작을 보여주었다. 대표곡 ‘빨자’를 부를 땐 관객의 무대난입(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과 마이크를 나누어 함께 부르는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펑크만으로 꾸며진 공연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오르고 마이크에 함께 입을 대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 밑에서는 몸을 부딪치는 ‘슬램’이 벌어지는 광경 앞에 마치 누군가의 세상에 발을 헛디뎌 잘못 들어온 사람마냥 맥주만을 홀짝이며 나는 말 그대로 ‘감상’을 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멋있는 사운드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때쯤 이젠 나가서 놀아도 되겠다! 라며 몸을 일으키게 한 밴드가 있었다.


부산 유일의 스케이트 펑크 밴드 “SIDECAR”


부산 유일의 스케이트 펑크 밴드 ‘사이드카’가 두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을 비롯한 왕성한 활동과 굳이 말을 하면 입 아픈 기막힌 실력에 두터운 매니아 팬층을 보유한 팀으로 이날 역시 리허설을 못해 부족했을 시간에도 여유롭게 관객들을 무대 앞으로 불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이드카는 드러머의 연주가 늘 인상적이다. 드럼을 찢을 듯한 폭발적인 힘과(실제로 이날 드럼을 찢었다.) 화려한 스킬들로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드러머의 연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하는 회상을 해본다. 강력한 힘이 빠르게 이어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과연 들어보지 않고서는 설명을 힘들 게 만든다. 언젠가 당신이 사이드카의 무대를 보게 된다면 드러머에 먼저 눈길이 간다고 감히 공언을 하고 싶다.


소년들이 열어젖힌 문 초록불꽃소년단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를 무려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연을 위해 서울에서 달려온 ‘초록불꽃소년단’이 이어받았다. 직설적인 가사와 파격적인 무대매너로 펑크매니아들 사이에선 촉망받는 신예 밴드. 공연을 즐길 때는 무아지경이었던 터라 ‘섹스’, ‘자위’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만 귀에 들어와 전체 가사가 무엇인지 꽤나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청소년들의 성 문제에 관한 비판을 담은 가사였는데 그 나름의 깊은 철학이 투박하고 거친 사운드를 만났을 때 터지는 상호작용이 계속 이 밴드를 찾게 만드는 매력이라 여겨졌다. 이런 면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평이 많지만 필자는 분명히 ‘호’의 문을 열어젖혔다. 초록과 소년 사이에서 타오르고 있는 저 불꽃이란 단어가 이 팀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오늘 뭐할낀데? 한잔 빨아야지! “STONED”


스톤드가 무대에 올랐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지난 vol.4 불금파티에서도 출연했던 스톤드는 이날 공연에서 제집에 온 듯 무대 위에서건 아래에서건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을 맘껏 즐겼다. 가장 펑크다운 무대였다고 해야 할까 연주도 틀리고 가사도 틀리고 심지어는 불러야 할 곡도 몇 곡 안 불렀던 것 같은데 가장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멀쩡할 때도 취한 듯 보이는 팀인데 정말 취해버렸으니 포텐이 터졌다고 해야할 것이다. 무대를 처음 보는 관객은 다소 당황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마치 친구들과 모여서 연말 송년회를 하는 느낌도 들었다. 다소 흐트러지기도 하고 악동스러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인지 이날 무대 역시 완벽했다고 평하고 싶다.


묵직한 호스트의 존재감 “SOUTHNINE”


마지막으로 15번의 사우스펑크리그를 이끌어온 기획자 양재동이 속해있는 밴드 싸우스나인의 순서가 다가왔다. 평소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부끄럼 많은 소년의 표정을 가진 양재동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어느새 펑크락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싸우스나인의 전신인 옐로로코 시절부터 사우스펑크리그를 기획하여 부산 펑크공연의 맥을 이어온 양재동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공연을 찾아준 관객들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싸우스 레코드 소속 D.Ocean과 함께한 콜라보 공연은 관객을 절정에 다다르게 하기 충분했다. 힙합을 주 장르로 하는 디오션이지만 이날은 키보드도 함께 연주하며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들린 연주 못지않게 강렬한 랩이 더해지니 관객들은 주저 없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함께 놀았던,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얼마 남지 않은 2015년과 안녕을 말했다.


1970년대 히피 문화를 지나 기득권에 대한 반항이 점점 고조에 오르던 시기. 과격하고 공격적인 연주와 퍼포먼스로 청중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Sex Pistols 이후로 펑크는 하나의 문화로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다. 찢어지다 못해 너덜너덜한 청바지, 찔리면 피가 나올 듯 뾰족하게 세우고 강렬한 색으로 염색을 한 헤어는 유행처럼 청년들에게 번졌고 반항의 상징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소비되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는 과격하고 무질서한 그들의 행태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펑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게 변모하고 있고 여러 매체에서 소모적으로 소비하다 시피 했던 과격한 이미지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본인들의 음악에 대한 고집과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정신으로 승화되고 있다. 가사에서는 패배감에 젖어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 도전이 있어야 패배도 노래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우리나라에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필두로 국민 모두가 노래방에서 ‘말달리자’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시기가 1997년, 우리나라가 IMF로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힘들고 고달픈 시기에 펑크는 누군가에겐 탈출구였고 부패가 팽배해있는 정치권에 대한 저항의 소리를 내지르는 국민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펑크라는 문화가 생겨난 것도 1976년 영국의 IMF 시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2016년의 시작에 서 있다.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새해에 우리는 ‘병신년’을 부르짖으며 기득권에 대한 냉소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희망찬 시작을 노래하기보다 당장의 내일 뭐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자고 권해보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소리치자. 우리는 지금 펑크를 들어야 할 때다.


 

절실할 때 등 돌리던

숨 막히는 세상이여

잘하니까 함 해봐라

대신 돈은 못 준다

우리 어디라도

받아줄 곳 없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메아리

 

이젠 모두 어디로

이젠 다들 어디로

-랄랄라, THE BANKRUPTS-


2016. 01. 15. WAESANO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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