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IN STAGE Vol.6 AWAN 기획공연
최근에 난 지칠 대로 지쳐있다. 여느 20대 후반의 청년이 겪을만한 앞날을 향한 고민으로 시작해, 채울수록 비워져만 가는 통장잔액을 바라보다 한 번 더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고는 여전히 일상을 뒤흔들고 있는 찰나의 어느 기억으로부터 짓이겨지고 밟혔으며 끊임없이 흐려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생긴 연휴였다. 머뭇거리던 차에 휴일은 시작되었고, 아무 계획을 세우지 못한 난 늘 있던 자리에 홀로 남아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의 바쁜 생활에 저항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체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난 왜 이렇게 나약하냐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참을 수 없어 욕설을 날렸다. 씨발.
밤에는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고 ‘난 졸라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나 자신을 속였다. ‘날이 지날수록 더 헝클어지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던 이적의 노래가사처럼, 스스로를 옭아매는 고민들을 끌어안은 채 연휴는 지나가고 있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 하릴없이 비슷한 나날을 보내던 중, 텅 빈 사무실 한 켠을 굴러다니는 리플렛 한 장을 발견한다. 5월 2일부터 시작한 공연이 이 날 마지막 공연임을 알리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날짜가 눈길을 끌었고, 이내 공연을 설명하는 타이틀 글자가 시선을 멈추게 했다.
‘Self Direction’ 자주적 방향설정이라는 뜻으로 ‘나와의 좀 더 내밀하고 친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던 공연설명에 마음이 동요하고 말았다. 그동안 WAESANO의 디렉터로써, 이런저런 공연들의 기획자로써, 늘 단체를, 공연을, 그 외 컨텐츠들의 방향을 설정해주기에 바빴지 정작 내 마음 하나 디렉팅하지 못한 멍청한 자신 덕에 리플렛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린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에 맞춰 공연이 열리는 보수동에 위치한 카페 달리로 향했다. 괜스레 발걸음이 빨라지고 시간이 멈춘 듯 운치를 더해가는 보수동 풍경에 잠깐이나마 붕 뜬 마음을 그대로 두었다.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기 마련’이라던 한때 영화캐던 찌질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 그저 아무도 날 모르는 공간으로 가는 이 순간이 썩 나쁘지 않다.
도착했다. 한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창가에 혼자 온 여인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서글한 인상의 사장님은 바빠 보였지만 낯선 곳에 들어온 내 모습에 웃음을 머금으며 맞아주었다. 따뜻하다.
카페 한 켠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특정한 공연 장르라기보다는 인스트루멘탈이라 불리는 복합적인 기악곡을 연주하는 공연인지라 주 악기인 기타 외에도 다양한 이펙터와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음향장치, 런치패드와 곳곳에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전선들이 악기 연주자의 무대라기보다 흡사 공상과학영화에서 볼 법한 연구자의 작업실과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기존에 많이 보아왔던 형태의 공연이 아님을 실감하였고 그 점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무엇을 듣건, 무엇을 보건, 새로울 것이라는 확신을 들게 했다.
한 가지 알릴 사실이 있다. Awan의 Self Direction 공연은 5월 2일부터 시작해 같은 달 8일까지 진행되었다. 기존 공연들처럼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매 공연에 다른 성격의 곡을 한 곡씩만 연주한다. 즉 슨, 매일 공연을 봐야지만이 Self Direction이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들이 하나로 완성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나는 공연 마지막 날 Awan의 설명을 듣고야 알아버렸다. Awan이 하고자 한 이야기의 마지막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도 잠깐, 기획의 신선함에 더욱 흥미로웠다. 연주자의 부담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뚝심 있게 밀고 나간 뮤지션의 고집과 그의 뜻을 존중해준 공연 스태프들의 신뢰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만족으로 작용하게 했다.
Self Direction의 마지막 이야기 Self Direction <Reprise>가 시작됐다. 그동안 내면과의 대화의 시간을 통해 감정을 잃어보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으며, 새로운 리듬을 생각하기까지 여정을 마친 후, ‘다시금 자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다’라는 메시지가 녹아있는 이야기의 마침표 공연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한 연주가 조금씩 카페 전체를 휘감싸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눈이 감기고 긴장으로 뭉쳐진 근육들이 살며시 힘을 풀어줬다. 눈을 떠보니 악기가 어느새 일렉기타로 바뀌어있었는데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복잡해 보이는 이펙터들을 단 한 번의 오차 없이 밟아가고 연주한 음악들은 그것을 통해 켜켜이 쌓였다. 그렇게 소리치고 욕을 해도 아무 대답 없던 내 자신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더 깊이, 더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한 층 한 층 쌓인 음악들에 패드를 누르며 효과를 더하자 연주는 절정을 향해가더니 이윽고 카페 전체를 꽉 채웠다. 그의 연주에 비해 작은 카페가 살짝 아쉽기도 하였으나 작은 공간에서 듣는 꽉 찬 연주에 파묻힐 수 있어 관객이 많고 적음을 떠나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 혼자 듣고 싶다’라는 생각도 하였으니, 이 이상 더 좋을 수는 없었다. 20분을 이어온 한 곡과 그 날의 공연. 그리고 Awan이 얘기하는 Self Direction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애초에 원고를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끌리는 대로 공연을 보러 갔고 부족하게나마 기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취재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일’이 아니라 오랜만에 나에게 작용한 순수한 행동이었다. 메모를 하고 싶어 노트를 펼쳤으나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당연히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느 예술가가 건네는 위로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했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나의 방황은 어느새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듯했다.
여운이 오래 남는 순간을 좋아한다. 순간은 느낄 새도 없이 흘러가 버린다. 컨텐츠는 끊임없이 소비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여운이라는 것을 소모적이라고 치부해버리기 그만이지만, 때로는 찰나의 순간으로부터 하루가 지배되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꼭꼭 씹어 좋지 않은 음식 없고, 슬프고 불안한 순간조차 되새겨보면 내 삶에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끝나지 않은 혼란에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잠재워지지 않는 불안에 오늘도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모습도 나 자신의 모습이기에, 흔들리는 중심을 다시금 잡아보기로 했다. 나 스스로의 디렉터가 되보기로 한다. 그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말고 나만의 이야기를 들어봐 주기로 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심리학자는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말했나 보다.
Photographed By. Sun Park
2016. 05. 19. WAESANO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