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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릴리 Jul 30. 2021

헝가리에서 교통사고 났던 날  

운명을 믿게 된 두 번의 사건들



아이폰의 아이클라우드와 페이스북 오늘의 기록들을 좋아한다.

잊고 지내던 나의 지난 한 때의 시간들을 대신해서 기억해주는 장치들이 있어

코로나 전에는 내가 여행하며 먹고살던 사람이었다는 게 생각나고 아련해진다.




얼마 전, 헝가리에서 보낸 지난 여름날들의 사진을 보다가

숱하게 갔던 헝가리에서의 추억들에 사무쳤다.


좋아하던 어부의 요새에서 보는 부다페스트의 노을,

모닝커피를 즐겨마시던 마차시 성당 옆 스타벅스,

혼자  겨울에 처음 갔던 부다페스트의 굴라시 스프 맛과 따스함,

오페라 극장 근처 노천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맥주,

도나우 강가에서 오후의 찬란한 햇살을 받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시간,

내 생일날 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뉴욕 카페의 케이크,

헝가리의 바다라 불리던 발라톤 호수의 티하니에서 보낸 오후.


내가 헝가리에서 이런 순간들을 보냈구나.


여행을 일로, 여행으로 수십 번을 오고 갔던 덕분에

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에서 꽤 여러 번의 사계절을 보냈고,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또 한 편으로는 유럽을 일로 다니며 별의별 일들을 겪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헝가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던 일이다.


동유럽 여행은 늘 빠듯한 스케줄의 여행이라

인솔자로서의 임무는 하루에도 숱하게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업무 강도가 가장 높은 것도 동유럽 출장이고, 늘 긴장하며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여정이 참 순탄한 날이었다. 손님들도 괜찮았고, 기사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자그레브에서 아침을 먹고 헝가리 국경을 넘어 부다페스트로 가는 중이었다.


모든 게 무탈하던 시간,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잠시 폰을 보고 있었는데 기사가 욕을 하더니 브레이크를 밟았고,

앞차의 유리가 박살이 나고야 말았다.


순간 손님들에게 괜찮으시냐고, 다들 안전벨트 매고 계셨죠?라고 물었다.

기사에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물었는데 앞차의 실수라고만 하고 사고를 확인하러 갔다.

천만다행으로 손님들도 아무런 부상자가 없었고 우리가 박은 앞차에 탄 사람들도 모두 안전했다.


우리가 탄 버스의 기사는 크로아티아 사람이고, 우리가 박은 차는 헝가리 차와 헝가리 사람인데

서로의 모국어가 아니니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급하게 경찰을 불러 사고 난 지점을 얘기하고 하염없이 경찰을 기다렸다.


유럽의 대부분의 차에는 개인정보 보호, 범죄의 위험 때문에 선팅을 하지 않고 블랙박스도 없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우리 버스에도 블랙박스가 없으니 누구의 과실인지 서로 책임을 따질 수가 없다.


몇십 분이 흐르고 경찰이 와서 사건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손님들과 사고가 난 버스에서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사건이 해결되기만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 보고를 하면 사건 경위서부터 시작해서 손님들이 스케줄을

그대로 임하겠다는 동의서까지 받아야 하는 절차들이 있어서 복잡하고 머리가 아파진다.

현지 가이드님부터 회사 본사 담당자, 현지 지사와 일단 통화를 하고 하나씩 해결할 일들을 정리한다.


헝가리 국경을 넘고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라니..

오늘 남은 헝가리의 일정은 대체 얼마나 힘이 들까?


모든 여행은 순조롭지 않아야 기억에 남는데

여행을 직업으로, 일로 하는 나는 여행이 순조롭지 않으면 너무 힘이 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로 고속도로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다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 내내 기분이 묘했다. 경미한 사고여서 안도감이 들었지만, 혹시나 큰 사고였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투어 리더로 이끌고 있는 이 팀은 어쩌지?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가이드님을 만나 손님들과 함께 도나우 강을 바라보는데 기분 탓인지 그날따라 부다페스트가 유난히 반짝였다. 지금 보는 아름다운 이 도시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가 났던 출장 이후로도 계절이 두 번이 바뀌고 헝가리를 여러 번을 더 다녀왔고

마침 귀국하고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던 시간.. 유럽 현지의 지인들에게 연락이 왔다.


릴리야,

부다페스트에서 유람선 사고가 났다는데 너 지금 어디니?


...

............

...................


순간 정적과 함께 모든 기운이 빠졌다.

현지 지인들과 메시지를 통해 듣는 상황이 한국의 뉴스 속보보다 빨랐는데

이미 사건의 전말과 뒤집힌 배와 여행 회사명, 현지 가이드와 인솔자의 이름까지도 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헝가리에서 탈 뻔했던 배였거나, 과거에도 나와 내 팀이 몇 번을 탔던 배였고

나와 직접적인 만남이나 교류가 없었던 가이드와 인솔자였지만 다른 동료들과는 알던 분들이었다.


몇 날 며칠을 집에서 뉴스와 메신저를 통해 소식을 듣고 눈이 붓도록 울기만 했다.

나에게 닥쳤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한참 동안 잠겨서

동유럽 출장을 피해서 다른 출장을 다녔다.


시리도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와 도나우 강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을 슬픔을 이 도시에 묻어두게끔 하는지..


나는 부다페스트를 떠올릴 때면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마음에 오래 남는 잔상들이 있고,

또 한없이 애처롭고 슬프기만 했던 어떤 마음들이 있다.


나에게 애증이라는 단어와 부다페스트는 왜 어울리는 걸까.

참 힘들었던 날의 기억이 많은 곳이지만 문득문득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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