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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릴리 Sep 06. 2021

엄마와 망고

호주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불과 한 달 전.

나는 엄마와 외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호주 여행을 떠났다.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그동안 아들을 키워주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싶어 했고

마침 나도 겨울은 비수기 시즌이라 일이 없었기에 여행을 하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은 최대 5박 7일.

수많은 여행지 중에 내가 어른들을 모시고 갈만한 나라가 어디일 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12월 초의 유럽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예쁘지만 너무 춥고 해가 짧고 스산하고

미국은 서부를 내가 안 가봤으니 가이드를 직접 할 수가 없고, 동부 역시 춥다.

동남아는 외삼촌과 외숙모가 여러 번을 이미 다녀온 상태라 갈 만한 나라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가던 때에 마침  

호주의 저가항공인 JETSTAR가 한국 신규 취항을 하게 되어 초특가 이벤트 프로모션을 광고했다.

인천-골드코스트 노선이 자그마치 편도 8만 원대!! 가격으로 갈 수가 있다는 것..

그 광고를 본 시점부터 아주 스무스하게 여행 준비 및 진행이 빨라졌다.


나는 혼자 저가항공인 젯스타를 타고 골드코스트로 들어가고

엄마와 외삼촌, 외숙모는 국적기 대한항공을 타고 브리즈번으로 들어가서

골드코스트 호텔에서 만나는 걸로 최종으로 정하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호주는 내가 23살에 워킹홀리데이로 1년 동안 살았던 나라였다.

그 이후로 국외여행 인솔자를 하면서 보름 동안의 자유배낭여행 호주 출장만 3번을 갔고

내 개인 여행으로도 갔던 나라. 나에게 호주는 제3의 고향쯤 되는 곳이다.

그러니 나에게 호주 여행은 아주 루트를 짜기도 쉽고 눈 감고도 길을 외울 정도로 생생한 장소이니

가족여행으로 얼마나 딱인가!


5박 7일의 짧은 일정이라 크게 브리즈번(반나절)-골드코스트-시드니 루트로 정하고 호텔과 항공을 다 예약하고 여행을 며칠 앞둔 시점.

지구촌 뉴스에서 난리가 날 만큼 호주의 산불 소식이 크게 이슈가 되고 있었다.

산불로 멸종 직전인 코알라가 죽어가고, 잿더미에 도시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사진들이 화제였다.


내가 살던 당시, 엄마에게 지금 내가 있는 호주는 대자연과 청정한 지역으로 유명하다고 그렇게나 자랑하듯이  말했고 내가 경이롭다고 느꼈던 호주의 풍경을 꼭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호주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특히나 시드니가 속한 NSW(뉴사우스 웨일스) 주의 산불이 심한 상태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항공 티켓을 날리더라도 시드니 일정을 줄이고 예정에도 없던 멜버른 일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항공과 호텔에 산불 때문에 취소한다는 메일을 보내고 무료 취소를 받기까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여행업 종사자로 휴가로 가는 개인 여행에서 이런 일을 또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업무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여행이 참 쉽지 않겠는 걸?

출장도 아닌데 왜 이렇게 준비 과정부터 힘든 거야?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이 심각한 산불로 재난이자 재앙 같을 이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어떤 추억을 안고 돌아올까?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대망의 출발 날!


인천공항에서 가족을 마치 손님처럼 대하는 직업병을 못 끊고 여행 주의와 안내를 시작했다.

서로 비행기와 도착지가 다른 일정 탓에 나보다 어쩌면 골드코스트에 먼저 할 수도 있으니 현지 픽업 기사 겸 가이드님을 만나서 브리즈번 여행을 하고 만나자고 당부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손님(?) 같은 가족을 배웅하고 나도 호주행에 비행을 시작했다.

정확히 호주는 11개월 만이었다.


안녕, 호주야~~ 잘 있었니?

나 드디어 엄마랑 호주에 오게 되었어. 잘 부탁해!! 제발.


그렇게 엄마에게 호주를 보여주고 싶다는 꿈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11년 만에 이루게 되었다.



드디어 호주 도착!!!!!!!!!!!

나름 영어를 잘할 줄 아는 외숙모와 여행의 고수인 삼촌은 엄마와 함께 무탈하게 입국 심사와 투어를 마치고 나보다 골드코스트 호텔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빨리 갈게~~ 기다려~~~


전날 저녁에 인천공항에서 만나 각자 비행을 하고 반나절 뒤에 남반구인 호주에서 재회라니.

처음부터 같이 출발한 여행이라면 이 감정을 몰랐을 것이다.

가족들이 기다려주는 해외라니! 그것도 내가 살았던 골드코스트!


골드코스트 서퍼스 파라다이스 힐튼호텔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나서

호주식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호텔 체크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가족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호주의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내가 살던 호주, 호주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어른들끼리 패키지여행을 가면 필수로 가야  곳들 대신 주말 밤에 열리는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야시장과 호주의 슈퍼마켓, 공원, 해변에서 맞는 아침 이런 것들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저녁 식사 무렵, 씻고 나갈 채비를 마친 후 가장 먼저 간 곳은 내가 제일 호주에서 많이 갔던 마트!!

마트 쇼핑을 가서 이것저것 호주의 유명한 것들을 신나게 읊어대듯이 설명을 했다.


엄마는 신토불이가 아니면 먹지도 않는 토종 한국인 이것만

내가 좋아하는, 꼭 먹어봐야 할 호주의 과일들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엄마~~ 호주는 이맘때 레드망고와 체리가 너무 맛있어!

내가 좋아하는 레드망고를 엄마가 드디어 맛볼 수 있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골드코스트에서 지낼 이틀간 필요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외삼촌과 외숙모와 마실 술도 사고, 양손 무겁게 해변 앞의 길을 걷는 게 왜 그렇게도 신나던지!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호텔에서 선물로 보내준 샴페인을 한 잔 내려마시고 망고를 예쁘게 담아서 함께 먹는 시간

아마도 이 감정은 그동안 수십 번을 떠났던 여행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엄마, 망고 어때?


인생에서 처음 먹어본 망고인데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었나?

딸내미, 아들내미 덕분에 호주 안 왔으면 이 과일 맛도 한 번 못 볼 뻔했네


그 말이 왜 이렇게 먹먹하던지.

동생과 나는 세계여행을 꽤 오랫동안 하느라 한국에 자주 없었고,

여행을 통해 세상의 온갖 좋은 풍경. 진귀한 먹거리를 다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나

정작 엄마에게는 이 레드망고 하나가 낯선 과일이었다니..


엄마와 남은 호주 여행에서는 망고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과일이길,

한때 본인의 딸을 호주에 보내고 너무 걱정되었다던 엄마가 이제는 호주 여행을 통해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길.

이번 여행은 그 정도면 아마도 대성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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