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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연 Nov 26. 2021

좋아하는 도시에서 내가 여행하는 법

당신은   좋아하는 장소에서   무엇을 하나요?

어렴풋한 기억으로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다.


네발 자전거로 시작해 두 발 자전거로 온전히 균형을 잡기까지 온 무릎이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페달을 밟으며 연습했다. 넘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고 온전히 길 위에서 나의 속도대로 달리며, 완벽한 나만의 순간을 즐기는 묘미를 느꼈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균형을 맞추는 법과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게 일상이 된 것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케언즈에서부터였다.

시골마을에 살았던 나는 자전거가 곧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낯선 도시에서 지도를 보며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다.


설렘을 좇아 떠난 1년간의 여행에서 나는 많이 외로웠는데, 그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면 페달을 밟고 도시의 끝으로 종종 향했다. 느릿느릿하고 심심하게 흘러가는 시골의 한적한 일상이 자전거를 타면 빠르게 스쳐가는 듯해서 좋았고, 피부에 닿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렇게 나는 어릴 때 배운 자전거로, 낯선 곳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다시 알게 되었다.



여행을 처음 했던 때쯤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때에 행복한지를 많이 몰랐다. 20대 때는 여행이 왜 좋냐는 물음에는 설렘이 좋아서라고 많이 답했다. 그 시절에는 설렌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을 때였고, 그 설렘을 느끼기 위해 나는 자주 여행길 위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다양한 상황을 겪었으며,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과 마주하며 살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행복의 모양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 기약 없는 훗날 보다 가까운 미래의 멋진 일을 그릴 때에 삶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통해 가고자 하는 인생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20대 내내 고민하고 어렵게 찾은 나의 평생의 일.. Lifework가 여행하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선택한 바람에(덕분에라고 하자) 일 년의 절반은 여행을 하며 살고 있는데


떠나는 삶이 지속될수록 권태로움을 느끼고, 나태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왜 스스로 낯선 환경을 선택했는지, 갖은 고생을 피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줄여서 사서 고생), 풍경에 감흥이 없어지기도 하고, 더 이상은 여행지에서 조차 아무런 짜릿함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여행이 지루해진 때에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되었던 건 런던이었다.

런던을 시작으로 마음에 깊이 두고 싶을 만큼 애정 하는 도시가 생기면 , 자전거를 빌리는 방법을 꼭 찾았다.


파리에서는 공용 자전거를 빌리는 시스템에 번번이 실패하던 찰나에 옆에 있던 파리지앵이 도와주었는데, 덕분에 나는 에비앙 하나를 바구니에 넣고 에펠탑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사설 자전거가 많은 도시에서는 비교적 쉽게 빌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어느샌가부터 자전거를 빌리는 일이 익숙해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시장에서 1유로짜리 주스를 사서 바다를 따라 달렸다.



또 스페인 세비야에서 숨이 찰 때까지 속도를 내며 달리다 맥주 한잔을 했고, 조금은 느리게 여행해도 좋은 라오스 방비엥에서,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스위스 알프스를 보며 달렸던 날은 인생 최고로 상쾌했으며, 프랑스의 작은 캠핑장을 누볐고 꽤 긴 시간 동안 머물렀던 뉴욕에서의 마지막은 센트럴파크 라이딩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나의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건 대학교 4학년 마지막 방학이었던 여름에 떠난 제주도인데, 5박 6일 동안 섬 한 바퀴를 돌고 온 일이다.



나는 자전거와 여행이 좋다.

이 두 가지가 좋아진 시점부터 삶은 더 행복해졌다.

낯설었던 여행지가 조금은 익숙해져 느슨함을 느낄 때엔 어김없이 자전거를 탔다.

내 속도대로,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균형을 맞춰서.


천천히, 가끔은 빠르게!​

긴 인생의 여정 동안 잘한 일 중에는 어쩌면 자전거를 배운 일과 여행을 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좋아하는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탈 날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꿈처럼 다가오기를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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